어떤 음반은 번거로운 취재 없이 크레디트에서만도 이야기를 건질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난 이승환 데뷔 앨범도 그런 작품이다.
일단 당시 이승환은 신승훈과 달리 가수로서 부각됐을 뿐, 송라이터로선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앨범 크레디트는 이승환이 10곡 중 7곡을 쓴 작곡가임을 당당히 증명하고 있다.
그중 B면 두 번째 곡 <좋은 날>은 《B·C 603》의 타이틀 곡이었고,대부분 류화지의 <텅 빈 마음>을 타이틀 곡이라 여겼다 A면 세 번째 곡 <가을 흔적>은 내가 남몰래 좋아한 싱어송라이터 이승환의 노래였다.
이승환 데뷔작에서 중요한 또 하나 이름은 오태호다.
그는 앨범의 다른 대표곡들인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와 <눈물로 시를 써도>를 만든 작곡가로서 더 유명하지만<좋은 날> 가사도 그가 썼다, 사실 오태호는 자타가 공인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심지어 여기에선 위대한 탄생의 유영선, 들국화의 손진태 등을 제치고 당당히 '리드' 기타리스트로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텅 빈 마음>의 마지막과 <좋은 날>의 인트로/아우트로 기타 솔로를 비롯한 수록곡들에서 그의 연주는 작곡자로서 뿐 아니라 기타리스트로서도 얼마나 훌륭한 (멜로디) 감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오태호는 과거 나와 나눈 인터뷰에서 잉베이 말름스틴과 리 릿나워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외 유영선과 편곡을 함께 한 어떤날의 조동익은 어쿠스틱 기타와 베이스, 드럼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고
이승환과 같은 해 데뷔한 <춘천가는 기차>의 김현철은 어쿠스틱 피아노, 신시사이저로 네 살 위 형을 돕고 있다.
이승환은 이때부터 <그냥 그런 이야기>로 자신의 궁극적 음악 목표가 '로커'임을 내비쳤지만
어린 나에게, 또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가 정점을 찍는 나중이 되어서도 그는 어디까지나 훌륭한 발라디어로 새겨졌고 또 남게 된다.
80년대와 90년대에 끼어 조금은 과소평가된 듯도 한 《B·C 603》은 재생하는 언제든 철없던 1989년 그 어느 날로 나를 이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