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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Vol. 8'

by 김성대


싱어송라이터 조용필의 창작 패턴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이라면 앨범 단위로 싱어와 송라이터를 구분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 앨범에선 창작과 노래를 동시에 주도하다가도, 또 다른 앨범에선 노래에만 집중하는 식이다.

<여행을 떠나요>가 수록된 7집이 전자였다면,

<허공>이 대표하는 8집은 후자였다.

13집과 함께 가장 탁월했던 음악 성취로 일컫는 7집을 내고 8집에서 그는 순수하게 노래만 불렀다.


가사 외우는데만 4년이 걸렸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앞세운 본작은 전체적으로 성인가요트로트 냄새를 많이 풍겼고, 그래서 중장년층의 압도적 공감을 얻었다.

조용필 8집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나온 앨범이라 <허공>과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랫말은 그때만 해도 나에겐 뜬구름 잡는 소리로만 들렸다. 무언지도 모르면서 서글펐고, 쓸쓸했다.

다만 그 스산함이 당대의 청춘을 정복한 이문세 것과 근본에서 다르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어른들의 노래구나.

해석은 어린이의 본능에 기대 완성되었다.


이 음반은 내가 양인자와 김희갑 콤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이다.

성인이 되고 이 앨범을 간간이 꺼내는 이유 역시 둘이 만든 <그 겨울의 찻집> 때문이다.

사랑을 "아름다운 죄"로 풀어내는 양인자의 저 독보적 사유는 사랑이 외로운 이유를 "운명을 걸기 때문"으로 쓴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거듭 발휘되며

그의 필력이 조용필의 가창력과 함께 전성기에 이르렀음을 들려주었다.


<그 겨울의 찻집>은 김장 담그고 겨울옷 꺼내는 이맘때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곡이다.

11월 비 오는 날에 <November Rain>을 듣거나, 10월 마지막 날에 <잊혀진 계절>을 찾는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이 노래는 겨울의 문턱으로 부지불식간 날 이끈다.

그렇게 한 번 집중해 듣고 나면 비밀스레 쌓여 있던 감정의 응어리가 일순 씻겨 내려간다.

그건 <상처>에서 폭발하는 조용필의 절창 때문일 수도, 가사와 음악이 피워 올리는 궁극의 조화 덕분일 수도 있다.

너무도 '뽕짝'스러운 다음 곡 <벌써 잊었나>와 한 앨범에 있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그 겨울의 찻집>이 지닌 품격은 조용필 음악 역사에서 늘 당당하다.

80년대 후반 가요계를 대표한 이 불멸의 발라드는 김기표의 <내 마음 당신 곁으로>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조용필을 데려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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