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 음악은 쓸쓸하다. 그러면서 따뜻하다.
군더더기 없는 스산한 온기. 윤상 음악의 매력은 이것이다.
음악평론가 김영대의 발라드 비평집 『더 송라이터스』를 읽고 오래간만에 <가려진 시간 사이로>가 듣고 싶어졌다. 1992년. 초등학교 시절로 보이는 곡 내용보다 조금 더 자란 중학생 때 만난 앨범.
역시 박주연의 가사가 일품이다. 그리움과 아쉬움, 설렘에 담금질한 시가 듣는 사람을 그 시절로 데려간다. 여기에 윤상의 노을 같은 멜로디가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 점잖게 어울리는데, 들을 때마다 한 사람이 쓴 노랫말과 음악인 것 같아 신기할 따름이다. 김원용의 색소폰 솔로가 그 시간, 기억 사이에서 수줍게 나풀거리다 사라진다.
박주연은 아득한 첫사랑을 시간을 매개로 추억하는윤상은 "사랑을 몰랐던 시절의 사랑 이야기"라고 말했다. 저 곡 외에도 <그래도 안녕>, <다시 얘기를 해줘>에도 이야기를 주었다. 윤상의 단짝 박창학은 이 앨범의 또 다른 대표곡 <너에게> 한 곡에서만 자기 재능을 펼친다. <너에게>에서 이영경의 피아노 솔로와 손무현의 기타 솔로는 화려한 듯 딱히 넘치진 않게 각자 해석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박창학은 앨범에서 윤상과 공동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끝으로 향한 이야기>에서 가장 부풀어 오르는 장혜진과 신윤미의 코러스. 자신의 밴드 페이퍼모드와 실험에 집중한 두 번째 파트와 달리, 대중 히트를 노린 윤상 2집의 첫 반쪽은 겨울이 슬슬 고개를 드는 요즘 들으면 딱 좋다. 겨울은 앞서 말한 '쓸쓸한 온기'에 정확히 부합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절기가 나름으로 쓸쓸해지고 나면, 그 절기는 이내 자신을 채워줄 온기를 필요로 한다.
이 앨범은 바이올린이 들리는 처음<그래도 안녕>부터 신시사이저와 일렉트릭 기타의 풍경으로 깜박이는 끝<나의 꿈속에서>까지 그 겨울스러움을 부둥켜안고 천천히 걸어간다. 저 고개 숙인 음악의 고독은 역시 박주연의 가사에 빚진 <다시 얘기를 해줘>에서 가장 절절하다. 김영대는 책에서 박주연을 한국 발라드 작사계의 고트GOAT라고 썼다. 동의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