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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사바스 'Paranoid'

by 김성대


1960년대 애스턴에 살던 젊은이들에겐 세 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다. 공장을 가느냐, 밴드를 만드느냐, 아니면 감옥엘 가느냐.

빌 워드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버밍엄에 속한 애스턴Aston에서 결성된 헤비메탈의 뿌리, 블랙 사바스.

장르 하나를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그들은 역사다.


블랙 사바스는 빌 워드의 말처럼 땀내, 기름내 나는 노동자 계급 출신 밴드였다.

케네디의 죽음, 찰스 맨슨의 광기, 알타몬트의 비극, 우드스탁 페스티벌, 그리고 베트남 전쟁.

오지는 60년대를 가로지른 저 모든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현실"로 끌어내린 것이 자신들의 음악이라고 말했다. 그 현실엔 오지 모친의 생활고도 포함됐다.


엄마가 청구서 대금 치를 돈과 식료품 살 돈이 없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찢어졌다.


가난은 오지를 일탈로 몰았고, 청년은 결국 옷가게를 털다 경찰에 붙잡힌다. 오지 아버지는 이번 기회에 아들이 정신 차리길 바라며 일부러 보석금 60달러를 내지 않았다. 6주 동안 감옥 신세를 진 오지는 감방에서 자신의 주먹에 'O-Z-Z-Y'를 새기며 전의를 다졌다.


메탈리카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블랙 사바스에게 <Iron Man>을 헌정했다.


사바스의 사운드 열쇠를 쥐고 있는 토니 아이오미는 빌 워드와 15살 때부터 합을 맞췄다.

3년 뒤 독일 투어 기회가 오자 다니던 공장을 그만 두리라 마음먹은 토니.

마지막 출근 날 반차를 내고 집에 왔을 때 토니 어머니는 근무 시간을 다 채우고 오라 다그쳤고,

토니는 다시 공장에 가 자리가 빈 프레스 가공 일을 대신 하다 오른손 중지와 약지 끝을 기계에 잃는다.

의사는 토니에게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거라고 했지만, 절망적 상황은 플라스틱을 녹여 잘려나간 손가락 끝에 붙인 토니에게 열정만 더 불사르게 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재즈 기타의 전설이 된 장고 라인하르트는 이때 토니에게 큰 영감을 준다.


헤비메탈은 5번과 6번 저음줄의 파워 코드power chord에 기반 한 장르다. 토니는 그 파워 코드를 최초로 발견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위대한 베이시스트 기저 버틀러까지 네 명이 1967년부터 시작한 잼은 최초 얼스Earth에서 이탈리아 공포 영화 타이틀을 빌려온 블랙 사바스당시 오지는 "저런 무서운 영화도 돈 주고 보는데, 음악으로는 그럴 수 없으란 법 있나?"라고 생각했다.로 바꾼 밴드 이름을 앨범 제목self-titled으로 쓰며 헤비메탈의 눈을 뜨게 했다. 참고로 4트랙 녹음기로 만든 데모에서 발전한 사바스의 데뷔작 제작비는 1,200달러였다.


레드 제플린의 오랜 투어 매니저 리처드 콜Richard Cole은 제임스 헷필드메탈리카도 처음 듣고 감동 먹은 블랙 사바스의 저 일그러지고distorted 커다란 암흑의 사운드가 "어디에서도 들은 적 없는 소리"라고 했다. 레드 제플린보다 컸던 그 소리는 마치 지옥문을 열어젖힌 듯 들렸는데, 재즈 드럼의 그늘 아래 있던 빌 워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 공연장에서 자신들에게 방아쇠를 당기지나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Paranoid》는 그 비현실적인 60년대를 닫고 70년대를 맞은 앨범이다. 아이언 메이든보다 10년은 앞서 '떼창을 부르는 기타 리프'를 들려준 첫 곡 <War Pigs>는 당시 베트남 전쟁과 미국을 조롱하는 것이었지만, 사실 그 조롱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전쟁광들을 향했다. <Iron Man>과 함께 헤비메탈 기타 리프의 아이콘이 된 타이틀 트랙 <Paranoid>는 한 곡이 모자라 마지막에 부랴부랴 만든 곡으로, 작곡 시간은 25분이 걸렸다.

가사는 이후로도 사바스 노랫말 대부분을 맡게 되는 기저 버틀러가 썼는데, 아레나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주삿바늘이 흩어진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쓴 <Hand of Doom> 역시 버틀러의 사유를 거친 것이다. 1집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온 <Electric Funeral>과 다소 이질적인 <Planet Caravan>은 판테라가 더욱 우울하게 커버했다.


그 시절 서양 엄마들은 어둡고 불경한 겉모습만 보고 자식들에게 사바스를 듣지 못하게 했지만,

부모들의 걱정과 달리 저들은 평론가 레스터 뱅스가 지적했듯 "사회 혼돈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려는 양심적 도덕주의자들"이었다.


1983년 『롤링스톤』 음반 가이드는 블랙 사바스 앨범들에 한결같이 1점씩5점 만점을 주었다. 블랙 사바스는 90년대가 되어서야 평단과 대중에게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하는데, 커트 코베인을 비롯한 시애틀/얼터너티브 록 스타들이 블랙 사바스의 영향력을 인정한 덕이었다. 눈치가 보였는지 그제서야 『롤링스톤』도 블랙 사바스 앨범들에 2점씩을 더했다.현재 저들이 《Paranoid》에 매긴 점수는 별 다섯, 만점이다. 이후 2025년까지 사바스는 음악에 조금이라도 '헤비'한 구석이 있는 음악가/밴드라면 모두가 기리는 팀이 됐다. 오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치른 지난 7월의 블랙 사바스 헌정 공연은 그걸 잘 보여주었다.


블랙 사바스 하면 디오Ronnie James Dio 시절을 최고로 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에게 블랙 사바스 프런트맨은 언제나 오지다. 세상만사 오리지널의 중요성, 위엄을 넘어설 수 있는 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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