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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

by 김성대


90년대 초반 중학생 때 내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단골로 드나든 스타는 조지 마이클또는 왬!과 머라이어 캐리였다.

안개 낀 아침 등굣길은 웬만하면 저 두 거물의 음악으로 채워졌고, 도로 위 자동차와 인도 위 가로수는 그대로 음악과 이어져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성공한 유명인들을 보며 '저 사람이니까'라는 전제를 깔곤 한다.

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될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디아 불랑제가 제자 필립 글래스에게 말했듯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없다."

그 과정에선 누구나 막다른 골목도 만나보고, 가난과도 씨름해 본다.

머라이어 캐리라고 달랐을까.

음악에 인생을 바치려 정착한 뉴욕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그녀는 밑창이 너덜거리는 신발 사이로 들어온 얼음이 녹아 양말이 젖어도 보며 성공을 꿈꿨다.

엘비스도 뜨기 전엔 트럭을 몰며 생계를 유지했고, 메탈리카도 마이너 시절엔 멤버들끼리 수건 하나를 돌려가며 썼다.

정상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 타고난 재능 이전에 후천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이들이다.

그들은 상황과 환경을 탓할 시간에 그걸 극복할 방법을 먼저 고려할 줄 안다.

머라이어의 경우 무엇보다 중요시 한 건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는 자기가 성공할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그래서 앞만 보며 달렸다.


1990년 NBA 파이널 축하 무대. 머라이어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내가 경기장에 걸어 들어갈 땐 누구도 나를 몰랐지만, 나올 땐 모두가 나를 기억했다. 승리였다."


아홉 살 때부터 자기 곡을 스케치하기 시작한 머라이어가 10대 중후반에 데모 테이프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의심 않고 분발해 온 덕분이다.

스무 살 전후에 본격 프로 세계에 뛰어들어 불과 2~3년 만에 메이저 시장에서 빛을 볼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녀의 배짱과 끈기, 성실함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일이다.

생각해 보면 하늘이 준 재능도 부지런한 사람만이 꽃피울 수 있는 것 같다.

게으른 사람의 재능은 발견조차 못 된 채 시들기 일쑤다.


머라이어 캐리는 1990년도에 자기 이름을 내건 이 앨범빌보드 앨범 차트 11주 연속 1위에 싱글 4장이 정상에 올랐고, 미국에서만 900만 장 이상이 팔렸다으로 데뷔해 90년대 세계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존재로 역사에 남았다.

아레사 프랭클린, 스티비 원더, 마릴린 먼로에게 강력한 영향을 받은 그녀에게 맞설 90년대의 이름은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온 정도밖에 없었다.

가늠하기도 힘든 보컬 옥타브전성기 때 7옥타브를 넘나 든다는 얘기가 있었다와 완벽하고 섬세한 싱어로서 표현력에 비해 그가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은 종종 간과되는데, 태어나 처음 데모 테이프에 실은 <Alone in Love>와 <All in Your Mind>는 그 사실을 증명하는 곡들이다.

머라이어의 노래들엔 그녀가 살아오며 느낀 감정들, 겪은 일들이 직접 묘사되거나 때론 은유되어 왔다. 거기엔 혼혈로서 감당해야 했던 정체성의 혼란, 인종 차별도 포함된다.


록의 마력에 빠져들기 전인 90년대 초중반 《Mariah Carey》와 《Emotions》, 《Music Box》와 《Daydream》은 내가 죽고 못 살던 애청반들이었다.

매년 12월만 되면 이미 두둑할 그녀의 잔고를 더 두둑하게 해주는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도 바로 그 90년대 중반에 태어나 엠지, 젠지 세대에까지 닿았다.


당연히 이 모든 걸 이루고 그녀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10대 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않은 성공에 대한 믿음과 확신, 그리고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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