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 스톤스 'Let It Bleed'

by 김성대



《Let It Bleed》에 실린 곡들은 초기 블루스에 대한 동경과 차용도, 사이키델릭과 히피의 무드를 품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브리티시 비트 스타일에 갇히지도 않은, 그저 '스톤스란?'이라는 명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것들이다.

코카와시노(粉川しの, 음악 저널리스트)


영미권을 비롯한 해외에선 롤링 스톤스와 비틀스 중 누가 더 좋으냐는 질문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차원의 우문이지만, 한국에선 엄마도 아빠도 모두 비틀스로 수렴된다. 국내 스톤스 팬들이 발끈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사실이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위대함과 천재라는 수식어는 언제나 비틀스의 몫이었다. 스톤스는 그저 저들과 동시대를 보낸 '악동'으로서만 묘사, 소비됐다.


이는 당장 서점에만 가봐도 안다. 비틀스와 폴, 존, 조지에 관한 책은 해외 저자든 국내 저자든 잊을만하면 내는 반면, 스톤스 관련 책은 그 흔한 번역본 하나 없다. 그 와중에 '국민 라디오 프로그램'이라 일컫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그널 음악은 또 스톤스 것이란 게 참 모순이다. 스톤스는 그렇게 AC/DC나 키스처럼, 세계에선 미친 듯이 유명해도 한국에선 불가사의할 정도로 무명인 밴드로서 통용돼 왔다.


오늘은 그래서 스톤스의 명반 한 장을 꺼냈다. 1969년 말에 나온 《Let It Bleed》다.

보통 이들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Beggars Banquet》, 《Sticky Fingers》, 《Exile on Main St.》를 꼽는데, 나는 스톤스의 과도기였던 이 앨범을 꼭 저 안에 넣어야 한다는 쪽이다.


음악 면에서 비틀스와 스톤스는 로큰롤과 알앤비를 공유한다. 두 밴드의 결정적인 차이는 블루스의 농도다. 비틀스는 로큰롤/알앤비에서 스스로의 장르를 개척해 나간 반면, 스톤스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블루스를 자신들의 뿌리로 삼았다. 스톤스는 밴드 이름 자체가 블루스 아이콘 머디 워터스의 곡 제목Rollin’ Stone에서 가져왔을 만큼 블루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장르적 직계인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은 블루스에 둔감하고 멜로디에 민감하다. 스톤스는 애초 한국 사람들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버릴 곡이 없는 작품이지만 《Let It Bleed》의 대표곡은 자타공인 <Gimme Shelter>다.

앨범이 나온 60년대 후반 스톤스의 주위는 개인, 사회, 정치 상 한결같이 어두웠다. 원년 멤버 브라이언 존스의 죽음, 알타몬트의 비극, 베트남 전쟁, 소련 KGB와 미국 CIA로 대변된 치졸한 냉전. 심지어 저기 뒤에 있는 곡 제목<Monkey Man>은 LSD가 대표한 환각 시대의 표징이었다. <Gimme Shelter>는 저 모든 우울을 메리 클레이튼의 힘찬 백코러스 위에서 추출한 로큰롤과 알앤비의 정수에 담아 날려 보냈다. 이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들『좋은 친구들』, 『카지노』, 『디파티드』에서도 들을 수 있어 더 정이 간다.


블루스 키드들답게 로버트 존슨의 유산을 재해석 한 <Love in Vain>도 놓칠 수 없는 트랙이다. 다른 블루스 레전드들을 두고 굳이 로버트를 택한 이유는 그 시절 믹 재거의 연인이었던 메리앤 페이스풀이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믹, 왜 당신의 영원한 블루스맨 로버트 존슨 곡을 여태껏 해보지 않았어?" 이 분위기 있는 블루스 넘버에서 우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유명한 라이 쿠더의 만돌린 연주도 들을 수 있다.


《Let It Bleed》는 브라이언 존스의 마지막 스톤스 앨범이자 믹 테일러의 첫 스톤스 앨범이었다. 브라이언은 키스 리처즈가 리드 보컬을 맡은 <You Got the Silver>와 <Midnight Rambler>에서 각각 콩가, 오토하프를 연주했고 믹은 <Country Honk>, <Live with Me>에 슬라이드/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더했다.

그 외 타이틀 트랙 <Let It Bleed>에선 "여섯 번째 스톤스"라 불린 이언 스튜어트의 기똥찬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며, 팔방미인 뮤지션 알 쿠퍼의 실력피아노, 프렌치 혼, 오르간을 확인할 수 있는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에선 프로듀서 지미 밀러Jimmy Miller와 함께 런던 바흐 합창단The Bach Choir까지 동원한 스톤스의 음악적 감각, 성장을 엿볼 수 있다.


《Let It Bleed》는 비틀스의 《Abbey Road》를 제치고 처음으로 영국 차트 정상에 올랐다.

한국과 달리 본토에선 비틀스와 스톤스가 동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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