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피스톨스라는 존재, 그리고 피트 타운센드가 기타 부수는 행위를 진정한 로큰롤이라 생각한 리치와 멤버들은 런던에 와서도 어릴 때처럼 매일을 함께 보냈다. 매니저 외엔 친구도 없고 다른 밴드들과 딱히 교류도 없었던 일상에 근거해 리치는 '매닉스가 해체하지 않을 확률'을 80퍼센트로 잡았다. 이런 분위기라면 앨범도 계속 내게 될 것 같다고 예감한 그와 멤버들은 『NME』표지에 등장해 "아직 우리가 성공했다 생각지 않고, 매체들을 안 믿은 지도 오래됐다"며 그저 자신들의 목표는 "세계 1위"일뿐이란 걸 분명히 했다.
92년 11월, 투어를 끝난 매닉스는 완성된 신곡 몇 개를 들고 데모를 만들러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2집에 들어갈 곡들은 그렇게 4주 만에 조금씩 골격을 갖추기 시작한다. 2집에선 프로듀서가 바뀌는데 헤븐리Heavenly Records 때부터 엔지니어를 맡았고, 1집에서 키보드를 쳤던 데이브 에링가Dave Eringa가 데뷔작을 함께 한 스티브 브라운Steve Brown을 대신했다. 제임스는 데이브를 가리켜 "위선적인 음악업계에서 유일하게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음악보단 가사에 방점을 찍는 리치 역시 뭔가를 시도해 보기도 전에 안 된다는 말을 먼저 한 스티브와 달리, 일단 해보자고 말하는 데이브 쪽이 더 자신들과 맞는 프로듀서 같다 생각했다고 한다.
92년을 한 달 남기고 치른 런던 공연에서 니키가 말 실수"마이클 스타이프(R.E.M.)가 프레디 머큐리와 같은 길을 가길 빌자"를 해버린다. 당사자는 비흡연자였던 매니저 필립에게 폐암 진단이 내려졌다는 소식에 따른 충격과, 퇴폐적인 생활을 하는 '록 순교자'를 미화하는 세상 풍조에 대한 초조감이 뒤섞인 발언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영국 언론을 비롯한 세간의 시선은 싸늘했다. 니키는 나중 저 말을 생애 가장 후회하는 발언이라고 했다.
해가 바뀌고 맞은 첫 달, 매닉스는 화려한 장비가 있던 영국 옥스퍼드셔 아웃사이드 스튜디오Outside Studios에서 두 번째 앨범 녹음에 들어갔다. 아웃사이드는 런던 교외의 오래된 정원 가운데 있는 스튜디오로, 스포츠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1집 때 예산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마감까지 10주를 잡은 밴드는, 자신들의 고유 사운드를 물색하는 동시에 '순수한 진실'을 찾는 걸 2집 방향으로 잡았다. 후자를 위해 이들은 1집의 분노에 슬픔과 실망의 감정을 얹은 가사를 곁들이기로 했다. 녹음 작업은 그해 4월 마무리된다.
그렇게 6월에 내놓은 싱글 <From Despair to Where>가 영국 차트 25위에, 같은 달 나온 2집 《Golden Against the Soul》은 영국 앨범 차트 8위에 오르며 순항의 돛을 올렸다. 투어 중 호텔 방에서 쓴 <Drug Drug Druggy>와 3일 만에 써낸 <Yourself> 등 밴드는 지난 6개월 사이 써둔 11곡 중 10곡을 두 번째 앨범에 실었다. 메인 송라이터인 제임스는 "양보다 질"을 추구하며 몇 곡의 괜찮은 부분을 조합하거나 부분적으로 손을 대는 것보단 한 곡을 철저하게 갈고닦는 방식을 2집의 방향타로 삼았다. 그리고 노래할 때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것에도 그는 신경을 썼는데, 이는 지난 앨범에서 자신이 뭘 부르는지도 모르고 부르는 것 같다는 일각의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보컬리스트 제임스는 2집에서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확하게' 부르려 했다.
순수한 진실과 함께 '순수함의 붕괴'까지 다룬 2집은 1집보다 어둡고 쓸쓸한 느낌을 띠었다. 그것은 뭐든 쏟아내야 했던 1집 때 상황에서 한 발 물러나 개인의 삶과 그 삶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 생각해 보는 내용이자 리치의 말처럼 순진함이 배신당하는 것 같은, 한마디로 "인생의 파멸적인 면에 대한 막연한 감상"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하지만 레이블과 매니저는 이 분위기를 너무 비관적이라 여겼고, 밴드도 긍정적인 노래들을 쓰려한 것이 본심이 아닌 쪽으로 흘러간 터라 살짝 찜찜해했다. 물론 그마저도 "눈 깜짝할 사이에 극복한 고뇌의 시간"으로 남게 되지만.
매닉스는 2집 첫 싱글을 발매한 6월 런던 공연을 시작으로 '피닉스 페스티벌' 등 영국 투어와 이런저런 유럽 페스티벌 무대들에 오르며 신작을 홍보했다. 7월엔 빈센트 반 고흐의 유언을 제목으로 쓴 두 번째 싱글 <La Tristesse Durera (Scream to a Sigh)>를 발매해 차트 22위에 올린 밴드는'La Tristesse Durera'는 '슬픔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9월, 다시 독일을 비롯한 유럽 공연을 거쳐 6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영국 밀턴킨스의 스타디움에서 열린 본 조비 공연에 서포트 밴드로서 이틀간 출연하며 대중과의 거리를 좁혔다. 본 조비 콘서트에 매닉스가 함께 한 건 다소 의외일 수 있는데, 아무래도 2집을 하드록/헤비메탈 전문지에서도 다뤄 이뤄진 섭외로 보인다.
밴드는 여세를 몰아 2집의 또 하나 대표곡이자 세 번째 싱글 <Roses in the Hospital>을 발표해비사이드엔 해피 먼데이스의 <Wrote for Luck> 커버를 실었다. 영국 차트 15위에 올렸다. 상승세를 눈치챈 『톱 오브 더 팝스』가 밴드를 한 번 더 자기들 프로그램에 초대했지만, 마침 니키가 10대 때부터 사귀어 온 레이철과 9월 25일에 결혼을 해 신혼여행을 갔던 차여서 투어 매니저가 미니 마우스 가면을 쓰고 니키 역할을 대신했다. 이 매니저도 키가 커서 당시 관객과 시청자들은 그를 진짜 니키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밴드는 13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10월 일본 투어를 거쳐 머물던 포르투갈에서 뜻밖의 비보를 받는다. 요양 중이던 필립이 12월 7일 세상을 떠난 것이다. 실의에 빠진 밴드는 3일 뒤 5천 명 관중과 만날 예정이던 런던 공연과 이듬해 초 태국 공연까지 잠정 연기했다. 대신 새 앨범이 고개를 들었는데, 매닉스는 미국 성향의 스타디움 록에서 벗어나 다시 '영국다움'을 바라보기로 결심한다. 2집에서 타이틀 곡을 가져온 EP 《Life Becoming a Landslide》에 수록된 건조하고 단순한 <Comfort Comes>는 그 맹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