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힙합을 표방한 BTS도 그랬듯 장르 음악을 하려는 이들에게 ‘아이돌’은 당당히 내세울 정체성이라기 보단, 부끄러워해야 할 낙인으로 비치기 일쑤였다. 저들에게 그 꼬리표를 붙이는 이들은 보통 자신들이 ‘진짜’라고 믿는 비아이돌 장르 음악 뮤지션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이었다. 하물며 이 비뚤어진 진단은 부지불식간 진실이 되어버리곤 했으니, 그 과정에서 아이돌 래퍼 또는 아이돌 록 밴드들의 진심 어린 피땀눈물은 억울한 누명으로 얼룩져야 했다.
밴드 씨엔블루도 유난히 진정성을 따지는 국내 록 커뮤니티에서 ‘가볍고 덜 진지한 음악을 하는 아이돌 밴드’로 폄하 돼왔다. 세차게 질주하는 신작 ‘3LOGY’의 첫 곡 첫 가사(“시작조차 못 했어, 끈을 몇 번 묶어도”)가 마치 자신들을 향한 일각의 부당한 오해를 떨치고 내 갈 길 가겠다는 각오처럼 들리는 건 그래서다. 오죽했으면 방송에서 불가피했던 ‘핸드 싱크’ 지적에 수 천만 원 자비까지 들인 장비 세팅으로 자신들의 라이브 실력을 증명했겠는가. 이 자의 반 타의 반 증명의 갈증은 신작 타이틀 곡 ‘Killer Joy’ 뮤직비디오에서도 ‘우린 아이돌 이전에 라이브형 록 밴드’라는 메시지로서 누차 해소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이돌 케이팝 팬들에게 록 음악의 매력을 전해주는 존재가 씨엔블루라고. 무릇 평가라는 건 바라보는 방향을 조금만 바꾸어도 전혀 다른 온도로 전개되는 법이다. 저들의 영향력이 국내에선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 장르인 록 음악을 향한 관심으로 수렴된다면 ‘진짜 록’을 한다는 사람들, 그 음악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희소식이지 않을까. 그러면 씨엔블루는 ‘그저 상업적인 음악만 추구하는 밴드’에서 ‘록 음악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고마운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저들도 이 고비 저 고비 거쳐 벌써 데뷔 17주년을 맞았다. 부디 비생산적인 오해, 적대감 따위는 이참에 모두 날려 보내자는 뜻이다.
씨엔블루 3집은 프로덕션, 연주, 가사와 가창 등 좋은 앨범을 검증하기 위한 전통적 잣대들에 꽤 무난하게 부합한다. 댄서블 트랙 ‘Lowkey’의 단단한 펑키 기타에서 정용화가 강조한 “밴드의 성장”이 느껴지고, ‘To the Moon and Back’의 세련된 그루브를 이끄는 강민혁의 드러밍에도 팀의 성숙함은 배어있다. ‘Little Things’와 함께 밴드로서 이들이 갈 길이 폴 아웃 보이보단 마룬 파이브나 콜드플레이와 더 비슷하리란 걸 들려주는 ‘Bliss’, 음악의 가장 위대한 가치일 위로를 망설임 없이 건네는 ‘그러나 꽃이었다’의 친절도 활동 20주년을 향해 가는 밴드의 심적, 기교적 여유를 반영한다. ‘그러나 꽃이었다’의 감성을 놓치기 싫다는 듯 더욱 침잠하는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에선 특히 잘 비벼낸 어쿠스틱 악기들의 생기를 통해 이들이 팝 사운드를 향해 얼마나 깊은 애착을 갖고 있는지를 듣는다.
사실 병오년 새해 벽두에 공개한 ‘그러나 꽃이었다’는 결국 10곡으로 채운 3집에서 “이제부턴 느리게 갈게요”라는 신호였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 인트로에서 피아노를 따로 떼어 내 도입부를 장식한 ‘기억의 온도’는 그 정점으로,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고 반짝이는 피아노 리프와 후반부를 움켜쥐는 커다란 스트링 편곡은 단연 압권이다. 아울러 공식처럼 곡 중앙을 가로지르는 기타 솔로에선 정용화의 기타리스트로서 욕심도 보인다. 계속 느리게 갈 듯하던 앨범 끝은 의외로 브라스와 중창 코러스를 곁들인 파티 송으로 매듭짓는데, ‘To the Moon and Back’에 이어 강민혁이 리듬 다루는 실력을 재차 뽐내는 ‘인생찬가’다. 씨엔블루가 일본에서 내놓은 14번째 싱글 ‘진세산카(人生賛歌)’를 번안한 이 노래는 과연 반전과 마무리 차원에서 최적의 선택이었다.
그러고 보면 강성 장르 팬들이 자신들이 추앙하는 장르의 진정성을 따지는 동안, 씨엔블루는 역으로 그걸 동력 삼아 더 성장, 성숙한 듯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듣기 좋은 음악이 훌륭한 음악이라는 게 ‘팔아야 유지될 수 있는’ 대중음악의 반박할 수 없는 속성이라고 할 때, 이들은 그 속성을 정확히 통찰한 셈이다. 숭배는 과장을 동반한다는 말처럼, 폄하는 편견을 거느리는 법. 록 밴드 씨엔블루냐 팝 밴드 씨엔블루냐, 한 가지 시선으로만 재단하려 말고 ‘팝록’이라는 더 넓은 시야로 그 음악을 즐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