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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31. 2016

지미 챔벌린

#16 Smashing Pumpkins, Jimmy Chamberlin

일단 영상 하나를 보고 시작하자.

언젠가 시카고에 있는 드럼 숍에서 펼친 즉흥 연주다. 주인공은 스매싱 펌킨스의 지미 챔벌린.

그의 이 살벌한 루디먼트(rudiment)는 아홉 살 때 자신에게 드럼을 가르쳐 준 찰리 아담스(이후 야니의 투어 멤버가 되는 인물)를 거쳐 10대 때 섭렵한 라틴, 브라질리언, 그리고 빅밴드 리듬을 기초로 한 것이다. 그야말로 재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구사할 수 없을 거의 완벽한 연주라 할 수 있겠다. 


지미는 내가 아는 '힘과 기교를 겸비한' 90년대 최고 드러머이다. 그와 경쟁할 수 있는 이는 사운드가든의 맷 카메론이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채드 스미스 정도라고 본다. 손놀림으로만 따지면 그린 데이의 트레 쿨도 목록에 넣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지미와는 연주 스타일이나 장르에서 가는 길이 달라 여기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지미는 록 드러머이기 전에 재즈 드러머이다. 그는 엘빈 존스와 토니 윌리암스, 레니 화이트를 좋아했고 좀 더 뻗으면 진 크루파까지 물고 들어갈 수 있다. 반면 록 드러머로서 그는 키스 문을 늘 언급했는데 존 본햄의 꽉찬 콤비네이션에도 지미는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현지 평단의 평을 빌면 그의 촘촘한 스네어 롤(snare roll)은 데니스 챔버스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엘빈 존스. 그는 지미 챔벌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재즈 드러머였다.
지미 챔벌린의 스틱 플레이는 종종 데니스 챔버스와 비교되곤 한다.

드러머로서 지미 챔벌린의 가장 중요한 커리어는 역시 스매싱 펌킨스다. 중간 중간 자리를 비우긴 했어도 2016년 현재 밴드의 드럼에 앉은 자는 어쨌거나 그다. 스매싱 펌킨스의 주인 빌리 코건은 지미 챔벌린을 무한 신뢰했다. 빌리에게 지미의 연주는 영감의 원천이었고 중요한 표현 수단이었다. 나는 이 밴드의 데뷔작 첫 곡('I'm one')이 이유없이 드럼 인트로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빌리 코건이 지미 페이지라면 지미 챔벌린은 존 본햄이었던 것이다. 스매싱 펌킨스의 전성기가 지미가 떠나기 전 3집에서 멈춘 것, 즈완(zwan)이라는 밴드에 다른 멤버는 다 버려도 지미만은 빌리가 데리고 간 것은 그런 둘 사이 끈끈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쯤에서 곡 하나 듣고 가자. 스매싱 펌킨스 최고작이라 일컫는 [Siamese Dream]의 첫 곡 'cherub rock'이다. 

지미 챔벌린은 'cherub rock'에서 자신의 진정한 드러밍, 그 시작을 알렸다.

1집에서 지미는 'snail'의 격정적 필인 정도를 빼면 거의 펑키(funky)한 드러밍을 들려줬다. 마치 익스트림의 폴 기어리가 ‘cupid’s dead’ 같은 곡에서 들려준 그런 느낌으로. 하지만 두 번째 앨범부터 그는 자신만의 플레이를 찾게 된다. 시작은 바로 저 곡 'cherub rock'에서부터였다. 압도적인 기타 음압에 맞서는 느긋한 쉐이크 플레이와 마지막 몇 초를 짓누르는 사나운 롤 플레이는 지미 챔벌린 드러밍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이 스타일은 저기 뒤 'geek U.S.A.'에서 정점을 찍은 뒤 3집의 'jellybelly'와 'an ode to no one'까지 이어진다. 재즈와 록 드럼을 접목시키는 데서 지미 챔벌린은 그 어떤 드러머보다 우위에 있었고 또한 극도로 창조적이었다. 빌리 코건도 바로 그 점을 높이 산 것일 게다. 

지미 챔벌린 드러밍의 끝판이라 할 수 있는 'geek U.S.A.' 라이브.
빌리와 지미의 집중력과 광기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트랙 'jelly belly'
크게 히트한 곡은 아니지만 지미 챔벌린의 중요한 연주가 담긴 'an ode to no one' 라이브.

지미는 기본적으로 테크니션이었지만 그의 장점은 듣는 귀에도 있었다. 그는 밴드와 따로 노는 드러밍을 하지 않았다. 지미가 키스 문을 좋아했던 건 그가 위대한 드러머였기도 했지만 '위대한 리스너'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zero'와 '1979'에서 그의 드럼을 들어보라. 곡을 살리고 자신을 죽이는 드러머 지미 챔벌린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어설프게나마 글쓴이가 커버해본 'zero' 드럼 연주.
'1979'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미의 드러밍은 나서지 않는다. 그저 음악에 스며들 뿐이다.

물론 그의 '경지'는 다른 곡들에서 발휘된다. 곡을 따르다가 이끌거나 그 반대로 가는 식의 드러밍 말이다. 가령 재즈에서 가져온 빠른 즉흥 솔로와 이야기가 있는 팝록 드럼의 여유를 그는 'tonight, tonight'과 'bullet with butterfly' 같은 곡들에 멋지게 응용했다. 계산적이면서도 여백이 있는 드러밍. 리듬의 밀도감과 정확성은 [Adore]를 넘어 밴드에 복귀해 내놓은 [Machina/The Machines of God] 수록곡 ‘raindrops sunshowers’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뮤지컬이 따로 없는 'tonight, tonight'의 구성은 사실 지미 챔벌린의 극적인 드러밍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레귤러 그립을 취한 지미를 볼 수 있다.
'bullet with butterfly wings'에서 지미의 드러밍은 곡을 관조하다 곡에 관여하고, 끝내 곡을 뒤흔든다.

대부분 악기 주법이란 것이 그렇겠지만 드러밍 역시 인간의 화법을 닮았다. 직설적인 말을 잘 내뱉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천성적으로 말을 아끼고 삼키는 사람이 있다. '에두른다'고 표현하면 맞겠다. 지미 챔벌린의 드러밍도 그런 '에두르는' 드러밍이다. 그의 드러밍은 직설, 직선과는 거리가 멀다. 악센트를 중시하고 정확한 타이밍을 노린다. 그래서 겉으론 물러 보여도 속은 단단한 리듬이다. 특히 손. 엄지와 검지를 중심으로 부리는 그만의 아득한 리듬 세계는 70년대 이언 페이스 것과 진배없다. 재즈를 연주하는 이언 페이스. 스윙하는 존 본햄. 지미 챔벌린의 드러밍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재즈 드러머 지미 챔벌린. 그는 2010년대 중반에 들어 18세 때 산타나 투어 멤버로 활약한 테너 색소포니스트 프랭크 카탈라노와 팀을 이뤄 밥(bop) 드럼에도 심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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