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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19. 2016

Albert Collins - Ice Pickin'

나에게 일렉트릭 텍사스 블루스의 참맛을 알게 해준 사람은 스티비 레이 본이 아닌 앨버트 콜린스였다.

카포(Capo)를 끼워서 내는 딱딱한 기타 톤, 다른 블루스 거장들에 비해 조금 모자란 보컬 실력을 상쇄시키는 펑키 블루스 프레이징은 비비 킹과 더불어 나를 일렉트릭 블루스의 세계로 인도해준 가장 훌륭한 가이드였던 것이다. 중에서도 1978년작 [Ice Pickin’]은 많은 블루스 팬들에게 그랬듯 나에게도 그의 최고 앨범으로 남아 있다. 1971년 하운드 독 테일러의 음반 녹음을 위해 브루스 이글로어가 설립한 앨리게이터 레이블은 사실 빅 월터 호튼, 펜튼 로빈슨, 코코 테일러 같은 시카고 블루스 뮤지션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던 곳이었는데 그 관습 아닌 관습을 처음으로 깨뜨린 뮤지션이 바로 텍사스 레오나 출신 “토탈 블루스맨” 앨버트 콜린스다.



이글로어에게 앨버트를 소개해준 사람은 블루스 연구가이자 프로듀서인 동시에 매니지먼트사 운영자이기도 했던 딕 셔먼. 당시 프레디 킹과 앨버트 콜린스의 음악으로 아침을 맞이하던 이글로어에게 이 제안이 얼마나 솔깃한 것이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앨버트와 이글로어 둘 모두에게 70년대 중반은 훌륭한 기회였을지 모른다. 65년작 [The Cool Sound of Albert Collins]로 가능성을 보이긴 했지만 71년작 [There’s Gotta Be a Change]가 흥행에서 참패하며 앨버트는 나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닐 다이아몬드의 자택 공사 목수 일부터 트럭 운전까지, 생계를 위해 갖은 일을 해야 했던 그에게 “당신이 할 일은 역시 음악”이라는 아내의 따뜻한 조언과 75년에 세상을 떠난 하운드 독 테일러를 대신할 간판스타를 물색 중이던 앨리게이터 레이블 사장의 절실함이 없었다면 앨버트 콜린스의 지금 명성은 어쩌면 꿈으로만 머물렀을지 모를 일이다. 역시 사람에겐 운이 따라야 하고 그 운이 가져다 준 기회 또한 잘 잡아야 한다.


앨버트 콜린스의 역작 [Ice Pickin']

하지만 그 때까지 이글로어는 앨버트의 공연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흠모하던 뮤지션을 직접 보기 위해 시카고에서 120마일 떨어진 일리노이 주의 한 샴페인 바를 찾은 그는 마치 괴어 있는 물처럼 낮은 키로 부르는 앨버트의 목소리와 뜻 그대로 차가운(Cool) 그의 기타 톤에 온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그 길로 앨범 준비와 공연을 위해 평소 신뢰하던 시카고 출신 연주자들을 앨버트에게 붙여준다. 이글로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흘러간 블루스 스탠더드 몇 곡을 앨버트에게 직접 골라주는 열성까지 보이는데 이 과정은 앨버트의 약점이었던 보컬에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앨버트의 밴드 아이스 브레이커즈(Ice Breakers)로 활동하게 되는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이드 기타에 래리 버튼, 키보드에 알렌 배츠, 베이스에 아론 버튼, 드럼에 캐시 존스, 그리고 A.C. 리드(테너 색소폰)와 척 스미스(바리톤 색소폰)의 색소폰이 있었다. 혹자는 이 중 존스의 드럼과 리드의 색소폰을 앨버트 콜린스 음악의 열쇠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1978, [Ice Pickin’]이 세상에 나온다석양을 등지고 텔레케스터(Fender Telecaster)를 각진 얼음 덩어리에 꽂은 앨버트의 모습이 차갑고 어두운 느낌은 평소 그의 기타 톤을 얼음 같다고 생각해온 이글로어의 앨버트를 향한 애정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그렇게 웨스트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웰 펄슨의 ‘Talking Woman’을 리메이크 한 ‘Honey, Hush!’가 흐른다쾌활한 셔플이었던 원곡의 비트를 직관의 펑크 비트로 바꾸어 원곡을 넘어선 또 다른 스탠더드로 만들어낸 앨버트의 역량그리고 무엇보다 이 곡을 선곡(앨범엔 아직 그의 입김이 반영된 곡들이 세 곡 더 준비되어 있다)해준 이글로어의 안목이 돋보이는 곡이다.



슬로우 블루스 ‘When the Welfare Turns Its Back on You’ 역시 프레디 킹의 ‘The Welfare (Turns Its Back on You)’를 앨버트 식으로 해석한 것인데, 로버트 클레이가 자신의 앨범 [Who’s Been Talkin’]에서 커버한 버전은 바로 여기 실린 버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곡 전체를 리드하는 알렌 베츠의 피아노 반주와 리드의 색소폰 솔로가 좋다콜린스의 오리지널인 8비트 펑크 트랙 ‘Ice Pickin’’을 지나 나타나는 또 하나의 커버곡 ‘Cold, Cold Feeling’. 티 본 워커의 51년 작이 원곡으로 워커의 버전이 혼 어레인지를 강조한 부드러운 무드였다면 앨버트 버전은 마이너 어레인지를 심은 고독의 심연이다주제는 다르지만 아내를 외출 보내고 아기 기저귀를 갈면서 밴드 멤버들에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 하는 ‘Conversation with Collins’에도 이 착잡한 정서는 연결되고 있다.



조니 왓슨(Johnny “Guitar” Watson)이 자신이 존경하는 게이트마우스 브라운(Clarence “Gatemouth” Brown)의 ‘Midnight Hour’ 인트로를 가져와 55년에 발표한 ‘Too Tired’는 같은 게이트마우스 브라운의 팬인 앨버트 콜린스를 통해 23년 뒤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이 역시 ‘Honey, Hush!’처럼 오리지널을 넘어서는 스탠더드로 남으며 앨버트의 남다른 곡 해석력, 연주력을 증명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Master Charge’는 이미 ‘There’s Gotta Be a Change’에서 남편과 함께 공동 작업을 했던 앨버트의 아내 그웬 콜린스가 가사를 썼다사용 시간이 1시간 40분밖에 남지 않은 스튜디오에서 물 흐르듯 써내려간 곡으로 잔잔한 펑크 그루브와 그 사이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금속음 기타그리고 아내의 앙칼진 목소리를 흉내 내는 앨버트의 유머 감각이 곡에 유연성을 더했다빠른 셔플 템포 트랙 ‘Avalanche’로 마무리 되는 앨범의 절정이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앨버트 킹은 언젠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로 앨버트 콜린스를 꼽았고 존 리 후커 역시 앨버트 콜린스 광임을 자처했다거장들이 좋아했던 거장앨버트 콜린스는 사실 이 한 장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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