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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11. 2016

UB40 - Signing Off

세상을 뒤집어 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이 대부분 거짓이었고 위선의 역사였다는 걸 다른 책들을 통해 알게 된 뒤 나는 강산에처럼 ‘삐따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을 믿지 않았고 그 언론에 놀아나는 여론을 가엽게 여겼다. 노동자 처우와 인권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면서 찾을 수 있을 리 없는 사회정의를 찾아보려 안달도 해보았다. 물론 모두 허사였다. 세상은 인권이나 정의엔 관심을 끈 지 오래 된 듯 보였다. 노동자 처우는 스스로 살아내야 하는 자신들의 과제이지 나라의 숙제는 아니었다. 지구는 중요한 많은 가치들을 가지친 채 그저 단 하나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로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자본주의다.


영국 실업 수당(Unemployment Benefit) 제도를 뜻하는 밴드 이름, 그것도 모자라 샛노란 관련 서류를 앨범 재킷으로 삼은 유비포티의 데뷔는 그래서 세상의 부조리를 개탄하는 한 청년에겐 신선한 충격, 달콤한 대리만족이었다. 한국 어르신들이 들으면 열이면 열 “뽕짝 같다”고 할 레게 리듬에 그들은 국가를 조롱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말들을 씹어 뱉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위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표류하는 모습이 나는 마냥 신기했고 한편으론 통쾌했다. 포근하고 살갑게만 들리는 60년대의 장르가 저항이라는 본류에 접어든 순간 소리와 텍스트 간 불편한 언밸런스는 편안한 밸런스보다 더 안정감을 띠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리메이크 해 일약 스타 밴드가 된 존재로만 이들을 기억하는 건 때문에 유비포티에 대한 오해요 모욕이다. 그것은 춤바왐바를 단순한 팝 밴드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을 한 때 유행한 뉴 메탈의 대표 팀으로만 아는 것과 다름없다. 일찌감치 덥(Dub)을 낚아챈 음악 센스도 물론 무시하면 안 되겠지만 유비포티의 진정한 업적은 가난한 사람들과 워킹 클래스의 피로에 찌든 메시지를 대중음악에 성공적으로 담아낸 일이다. 그것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해냈기에 값지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

밥 말리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죄 없는 아이들, 어이없는 배의 침몰로 잃어버린 역시 죄 없는 우리 아이들이 생각난다. 이 신나는 자메이카 그루브 앞에서 청년은 중년이 다 되어서도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지구상 단 하나의 원리는 그런 나더러 “가만히 있으라” 한다. 좌절하고 방관해야 무사할 수 있는 세상. 그래, 나는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세상을 뒤집고 싶어 한 마음은 피 끓는 젊음이 내게 건 불가능한 주문이었을 뿐, 생각보다 훨씬 견고한 현실은 내 가련한 의지를 단박에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그러나 난 들을 수 있다. 유비포티의 음악에서 나는 희망을 들었고 지금도 듣는다. 깨우친 사람들이 향유할 밝은 미래를 음악을 통해 볼 수 있는 이 경험은 마치 어젯밤 설렜던 꿈과 같다. 영원히 깨지 않을 그 꿈을 꿈꾸며, 이 음반을 세상 모든 노동자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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