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제이팝 여왕
2010년 9월이었던가. 데뷔 앨범 한 장으로 제이팝의 희망과 상징이 된 우타다 히카루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잠정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전작 ‘Heart Station’에서 헤아리면 8년이다. 그런 그가 엔카계의 거물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후지 케이코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낸 뒤 새 앨범을 갖고 돌아왔다. 9월19일, 우타다는 아사히TV 장수 음악 프로그램 뮤직 스테이션(Music Station) 30주년 기념 특집방송에 출연해 신곡 ‘흐르는 벚꽃(?流し)’을 열창하며 5년 만 방송 무대를 깔끔하게 소화했다. 프랑스 사진작가 줄리앙 미뇨가 찍은 재킷 사진을 풀어 쓴 타이틀 ‘Fantome’은 우리말로 ‘환상, 환영(幻)’ 또는 ‘귀신(鬼)’이라는 뜻. 추측대로 3년 전 세상을 등진 우타다의 모친에게 이 앨범은 바쳐졌고 지난 10월10일, 작품은 오리콘차트에 첫 등장해 조용히 정상에 올랐다.
신작 ‘Fantome’은 지난해 3월부터 제작에 들어갔다. 먼저 공개한 디지털 싱글 3곡과 신곡 8곡을 포함 도합 11곡을 앨범에 담았다. 우타다가 직접 브라스 어레인지를 입힌 ‘친구(ともだち)’, 일본 산토리 천연수 광고 음악으로 쓰인 ‘길(道)’, 94부작 NHK 드라마 토토언니(とと姉ちゃん)의 주제곡 ‘꽃다발을 너에게(花束を君に)’, 니혼TV 보도 방송 뉴스 제로(News Zero) 엔딩 테마에 삽입된 ‘한 여름의 비(?夏の通り雨)’, 그리고 조쉬 그로반과 조지 벤슨, 자미로콰이 등 쟁쟁한 뮤지션들의 음반 어레인지를 맡아온 사이먼 헤일이 스트링을 넣은 ‘나의 그녀(俺の彼女)’까지. 우타다는 8년 공백이 무색하게 정제되고 절제된 노래와 사운드 디자인 솜씨를 보란 듯이 선보이고 있다. 혹자는 이를 “결혼과 출산을 겪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온화함”으로 표현했는데 아마 그 사람은 ‘인어(人魚)’라는 곡에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다.
지인들의 몇몇 피처링도 눈에 띈다. 일본 힙합 MC 코(KOHH)가 도와준 ‘망각(忘却)’, 동경사변의 시이나 링고가 등장하는 ‘2시간 짜리 바캉스(二時間だけのバカンス)’, 지금은 해산한 알앤비 유닛 N.O.R.K의 보컬이었고 현 도쿄 레코딩(Tokyo Recordings) 레이블을 운영 중인 코부쿠로 나리아키(OBKR)의 참여는 분명 우타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시이나 링고가 피처링 한 곡은 일본 음원사이트 레코쵸코(レコチョク) 광고에 쓰이기도 했다.
“아티스트로서 성숙을 들려주는 음반.”
“그의 작품들 중 가장 교묘하고 섬세한 앨범.”
음악사이트 앙코르(encore)의 시미즈 코지는 “삶과 죽음의 냄새가 배였음에도 일상생활에 어울리는 팝 앨범”이라고 이 앨범을 소개했다. 그리고 윤회(輪廻). 우타다 히카루는 자신의 신작을 윤회의 시선으로 대했다고 한다. 윤회란 무엇인가. 생명이 있는 것은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보통의 삶을 살고 싶어 잠시 자신을 죽였던 우타다와 물리적인 삶을 마감한 후지 케이코는 결국 이 앨범을 통해 다시 만난 것이 아닐지. '가족 영화'의 대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빌면 이것이야말로 '환상의 빛(幻の光)'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