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Japan
케이팝과 제이팝의 '운명'은 사실 그리 다르지 않다. 두 장르 아닌 장르엔 어떻게든 영미 팝과 닮거나 그것과 차별화된 결과물로 영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묘한 심리가 깔려있는데, 가령 그 말에서 벌써 영미 대중음악에 대한 추종심이 느껴지는 "한국 사람이 만든 것 같지 않아서" 훌륭하다는 음악과, 아시아 쪽에서나 통할 법한 비주얼을 앞세운 집단군무 정도로 영국과 미국 시장을 뚫어보겠다는 식으로 그것은 드러난다.
하지만 팝이라는 개념과 성질 자체가 어차피 저들의 것일뿐더러 작법과 창법, 심지어 안무에서도 레퍼런스 의혹(?)을 벗어날 길 없는 한국과 일본 팝의 한계는 그야말로 운명이라고 밖엔 표현할 길이 없어 보인다. 싸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안에 문화를 초월한 유머 코드가 있었기 때문이지, 싸이의 음악이 획기적이어서가 아니었다는 건 그래서 되새길 만한 부분이다. 외려 싸이 음악엔 요즘 유행하는 영미 팝의 일렉트로하고 하우스한 속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그 익숙한 속살이 유튜브라는 겉옷을 만나 대박을 터뜨린 것, 그것이 바로 '강남스타일'이었다.
반면, 베이비메탈(Babymetal)은 싸이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시도를 했다. 이 팀은 마구간에서 말춤 추고 놀이터에서 선탠 하는 블랙코미디가 아니라 아이돌과 헤비메탈이라는, 어찌 보면 상극에 있(다고 여겨지)는 장르 융합으로 일류(日流)를 꿈꾼다. 멤버 수와 노출 수위 사이에서 고민해오던, 내수시장 규모도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중요한 결성 이유도 결국 영국(유럽)과 미국인들의 눈도장이란 얘기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베이비메탈은 급기야 유럽 각국에서 열리는 메탈 페스티벌 러브콜을 비롯 각종 굵직한 공연들을 정식 밴드 포맷 라이브로 잇따라 소화시키고 이제는 자타공인 헤비니스계 유명 인사가 되었다. 내가 이 팀을 안 것도 고백건대 일본 아이돌 잡지가 아닌 서양 헤비메탈 잡지를 통해서였다. 아이돌 메탈 즉, ‘베이비메탈’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통한 것이다.
이 앨범에 담긴 건 한국 대중이 경험한 "하드한 록 사운드가 섞인 아이돌 음악"이 아니다. 제대로인 게, 그 안에선 캐니발 콥스(Cannibal Corpse)가 <요술 공주 밍키>를 부르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뽀뽀뽀>에 출연한 스태틱 엑스(Static X)를 상상하면 될까. 여하튼 깜찍한 칩튠으로 끔찍한 데스메탈을 일삼는 베이비메탈이 대견한 건 이처럼 장르의 틀을 깨고 장르 간 소통을 튼 점이다. 무릇 논리가 얕은 것은 고만고만한 눌변에 머물게 마련이나 깊은 논리가 담긴 것은 짜릿한 달변으로 솟구치는 법. 정체 모를 해골 복장 테크니션들로 뭉친 백킹 밴드의 연주만으로도 이 앨범은 수준급 헤비메탈 앨범이다.
죽음(Death)을 무릅쓴 세 멤버가 혀 짧은 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첫 곡 'babymetal death'부터 팀의 색깔과 의지는 확고하다. 이를테면 림프 비즈킷(Limp Bizkit)과 메탈리카(Metallica)를 벗 삼아 "초콜릿 줘!!"(「ギミチョコ!!」)라며 조르거나(「おねだり大作戦」), 처절한 그로울링과 사악한 래스핑에 레게가 맞서는 사이 "2 다음은 3, 7 앞엔 6" 같은 시시한 숫자 놀이(「4の歌」)를 해대는 모습은 직접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물론 그 와중에 “왕따는 절대 안 돼(「イジメ、ダメ、ゼッタイ」)”라고 부르짖는 헤드뱅어(「ヘドバンギャー!!」)들의 소소한 ‘록 스피릿’도 절대 놓치지 않고 있어 좋다. 그 옛날 개구쟁이들이 심심찮게 끊어먹었던 고무줄 스텝보단 날랜 더블베이스 스텝을 더 즐기는 세 소녀의 핏빛 골계미. 웬만한 블래스트 비트엔 눈도 꿈쩍 하지 않을 메탈 팬들조차 부담스러울 그 모진 음압을 견디며 깜찍하고 어여쁜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펼쳐내는 저들에게서 나는 케이팝과 제이팝이 영미 팝을 본질적으로 넘어서는 데 도움을 줄 작지 않은 힌트를 보았다.
★★★★
●수록곡
1. Babymetal Death
2. Megitsune (メギツネ, Female Fox)
3. Gimme Choko!! (ギミチョコ!!)
4. Ii ne! (いいね!, It's Good!)
5. Benitsuki –Akatsuki- (紅月-アカツキ-, Crimson Moon -Dawn-)
6. Do・Ki・Do・Ki☆MORNING (ド・キ・ド・キ☆モーニング, Heartbeat Morning)
7. Onedari Daisakusen (おねだり大作戦, Begging Operation)
8. 4 no Uta (4 の歌, Song of 4)
9. U.ki.U.ki★Midnight (ウ・キ・ウ・キ★ミッドナイト, Ch.ee.rf.ul★Midnight)
10. Catch Me If You Can
11. Akumu no Rinbukyoku (悪夢の輪舞曲, Nightmare's Rondo)
12. Headbanger!! (ヘドバンギャー!!)
13. Ijime, Dame, Zettai (イジメ、ダメ、ゼッタイ, No, More, Bullying)
●멤버
Su-Metal - vocals, dance
MoaMetal - scream, dance
YuiMetal - scream, 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