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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30. 2016

Rage - The Devil Strikes Again

90년대로 돌아간 독일 헤비메탈의 자존심


독일 헤비메탈 밴드 레이지Rage의 리더 피비Peter "Peavy" Wagner(보컬/베이스)는 자신들의 스물 두 번째 작품을 저렇게 요약했다. 실제 신작은 “90년대로 돌아가려 했다”는 피비의 뜻에 걸맞게 순혈 메탈 에너지로 끓어 넘친다. 레이지의 전성기, 그러니까[Trapped!]와 [The Missing Link], [Black In Mind]의 느낌이 이번 앨범에는 나이테 마냥 새겨져 있으며, 빅토르 스몰스키Victor Smolski 못지 않은 테크니션 마르코스Marcos Rodriguez(기타), 옛 멤버 크리스Chris Efthimiadis의 야수성에 마이크 테레나Mike Terrana의 기교를 겸비한 드러머 바실리오스Vassilios “Luckyˮ Maniatopoulos의 영입은 전성기를 지탱한 트리오 라인업의 노골적인 재연이다. 군더더기 없는 톤 메이킹, 블래스트 비트와 슬로우 비트를 오가며 형성하는 템포의 박력 또는 변덕, 폭풍 같은 기타 리프, 그리고 세월의 흔적을 지워낸 피비의 목소리. 모든 조건이 완벽했던 덕에 [The Devil Strikes Again]은 무리없이 세상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앨범 재킷 이미지(악마의 해골 주위에 꼬인 구더기들)가 곧 앨범 속 음악이라고 피비가 규정한 끝에 터져나오는 첫 곡 ‘the devil strikes again’은 그 파괴감과 속도감이 영락없는 ‘black in mind’의 앙금이다. 이어 짧은 드럼 인트로에서 덜컹대는 셔플 리듬으로 나아가는 ‘my way’는 정직한 코러스와 아름다운 기타 솔로 라인이 오래 기억에 남을 곡으로, 첫 곡과 함께 따로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어 트랙에 대한 피비의 애정을 더 느낄 수 있다. 빨라도 멜로디만은 반드시 지켜내는 하드코어 펑크 넘버 ‘back on track’을 지나 저 옛날 ‘the crawling chaos’가 떠오르는 ‘the final curtain’의 메인 기타 리프는 이 앨범이 서서히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니나 다를까 바실리오스의 더블 베이스 드럼이 작렬하고 뒤이어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식 갤로핑galloping 기타 리프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려나가는 장관이 펼쳐진다. 남성 록팬들의 우상인 아이언 메이든의 짧고 짙은 그늘이 걷히고 이번엔 메가데스Megadeth에 영감 받은 듯한 ‘ocean full of tears’가 근엄하게 질주한다. 여기서 기타 리프와 톤은 메가데스 것이지만 메인 코러스 멜로디는 온전히 레이지의 것이다. 한편, 마르코스 로드리게즈의 기타 솔로는 이 앨범을 듣는 내내 글쓴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멜로디 라인이 썩 괜찮은 기타리스트이다. 역시 피비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레이지의 이번 작품은 사실 은근히 더블 앨범이다. 통째 오리지널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커버 세 곡을 뺀 13곡은 90년대 레이지 클래식을 표방한 피비 바그너의 고뇌에 찬 결과물들이다. 다시, 신보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타 리프를 들려주는 ‘deaf, dumb & blind’가 벼락 같은 템포체인지를 동반, 지루함을 없애주는 동안 한 쪽에서 몸을 풀던 ‘spirits of the night’가 성큼 들어선다. 역시 예사롭지 않은 기타 리프를 가진 트랙으로 딱히 버릴 곡 없이 이처럼 여덟 번째 트랙까지 왔다는 것은 이 앨범이 명반으로 남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점칠 수 있게 한다. 정직한 템포로 스피드 보단 헤비니스에 방점을 찍은 ‘times of darkness’,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고전을 비튼 제목이 재미있는 후크 넘버 ‘the dark side of the sun’, 트리오 라인업이 뽐낼 수 있는 최선의 호흡이 담긴 ‘bring me down’, 리더의 결정이자 의지인 탓에 멈출 수 없어 보이는 90년대 감각의 시현 ‘into the fire’, 그리고 다소 무겁고 처량한 록 발라드 ‘requiem’까지. 작품은 지치거나 멈추지 않고 제법 먼 길을 달렸다. 이어지는 러쉬Rush와 스키드 로우Skid Row, 와이앤티Y&T 커버 버전들은 레이지라는 밴드가 음악적으로 어디에 빚을 지고 있는지를 들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다.



어벤저Avenger라는 이름으로 85년 데뷔 후 밴드 레이지에게는 크게 세 차례 변화 내지는 단계가 있었다. 가능성을 보여준 [Reflections of a Shadow]까지 몸풀기 단계가 그 첫 번째라면 전성기와 내리막길이 한끗 차이였던 [XIII]와 [Ghosts]까지가 두 번째 변화였다. 그리고 러시아의 스티브 바이Steve Vai 빅토르 스몰스키를 맞아 [Welcome to the Other Side]부터 2013년작 [LMO]까지 이끌고 간 12년의 세월. 그것이 바로 밴드 레이지의 세 번째 변화요 진화였다. 그리고 2016년인 지금 레이지는 피비를 뺀 나머지 멤버를 전원 교체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물론 그 회귀는 아주 성공적이다. 수작으로 남게 될 [The Devil Strikes Again]은 때문에 레이지의 네 번째 변화의 역사에서 그 첫 발을 담당하게 될 작품이다. 이것은 옛 영광에의 집착이 아니다.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한 집념이다.


* 이 글은 대중음악 잡지 <파라노이드(Paranoid)>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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