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던록을 탐닉한 두 번째 홀로서기
록 팬들 중 십중팔구는 잭 와일드 했을 때 오지 오스본을 함께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잭 와일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오지 오스본 밴드에 합류하면서부터였고 합류 뒤 깁슨 레스폴 불스 아이Bull’s Eye로 쏟아낸 'mr. crowley' 기타 솔로 역시 랜디 로즈를 사랑했던 팬들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히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지 오스본 밴드는 날카로운 피킹 하모닉스를 즐기는 잭 와일드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었고 지금도 차지하고 있다. 제이크 이 리라는 불세출 기타리스트를 이어 근육질 랜디 로즈를 자처한 그 시절 잭 와일드의 인기와 지명도는 하늘을 찔렀었다.
하지만 정작 잭 본인에게 더 중요한 밴드는 블랙 라벨 소사이어티일 것이다. 하드록과 슬러지 메탈, 서던 록을 어우르며 장르 탐닉을 감행한 이 오래된 프로젝트를 통해 잭은 자신의 기타리스트로서 자질과 송라이터로서 역량을 마음껏 뽐냈다. 오지 오스본 입장에선 범작들이었을 [Ozzmosis]와 [Down to Earth] 사이에 [Sonic Brew]라는 앨범을 들이밀며 데뷔한 블랙 라벨 소사이어티는 2년 전 아홉 번째 작품 [Catacombs of the Black Vatican]을 발표, 꾸준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오지 오스본과 잭의 인연은 알다시피 2007년작 [Black Rain]에서 멈춘 상태. 잭 와일드는 더 이상 오지 오스본이라는 거인의 어깨를 빌릴 필요 또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사실 잭 와일드는 하드록과 헤비메탈에만 능숙한 기타리스트는 아니다. 그는 기타 외 피아노와 만돌린, 밴조까지 다루며 컨트리 록과 아메리카나Americana도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뮤지션으로, 94년의 프로젝트 프라이드 앤 글로리Pride & Glory는 그 결실이었다. 드럼 정도를 뺀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하는 정성을 넘어 믹싱과 프로듀싱에까지 관여, 진정한 잭 와일드표 음악을 선보인 이 시도를 계기로 그는 본격 솔로 앨범을 구상하게 되니 2년 뒤 나온 [Book of Shadows](1996)가 바로 그것이다. 강력한 일렉트릭 헤비니스 대신 포크와 서던록의 낭만으로 흠뻑 적신 이 앨범은 프라이드 앤 글로리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잭 와일드 음악의 다른 지표를 보여주었다는 데서 큰 의미를 띠었다.
그리고 20년 뒤, 잭은 닐 영 풍 서던록과 지미 헨드릭스의 블루스록 향취로 두루 덮은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내놓는다. 제목은 [Book of Shadows II]. 타이틀만으로 이 앨범이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에 대한 주석이라는 것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더욱 차분해진 분위기, 보다 정갈한 보컬 라인과 성숙해진 작곡력, ‘신의 한 수’가 될 하몬드 오르간 연주, 어쿠스틱 스트로크에서 일렉트릭 솔로로 갈아타는 드라마틱한 기타 연주의 반전까지. 흔히 전작 만한 후작은 없다고들 하지만 잭 와일드는 20년간 다져온 음악 감성과 장르 소화력을 바탕으로 전작을 뛰어넘는 후작을 가져왔다. 이것은 남녀노소가 부담없이 즐길 만한 작품이다. 감미롭고 강렬하다. 가령 그의 마초 성향을 부담스러워 한 여성 록팬들에게 나는 ‘forgotten memory’나 ‘sorrowed regrets’ 같은 곡들을 주저없이 권할 수 있다. 더불어 ‘autumn changes’와 ‘lay me down’의 기타 애드립은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이자 전부이며, ‘sleeping dogs’는 더 말할 것도 없는 닐 영의 환영이다.
언뜻 느긋하고 헐렁해보이지만 그만큼 견고한 앨범이다. 잭 와일드는 이 앨범을 기점으로 뮤지션으로서 한 단계 더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밴드 차퍼스가 영향 받은 블랙 라벨 소사이어티 역시 그런 리더의 역량에 비례해 승승장구 할 것이고 [No More Tears] 시절이 언제나 그리울 오지 오스본도 이번 음반을 듣고 잭의 재영입을 호시탐탐 노리게 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Book of Shadows II]는 잭 와일드의 조용한 자기 증명과도 같다.
* 이 글은 대중음악 잡지 <파라노이드(Paranoid)>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