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Dec 06. 2016

Eric Clapton - I Still Do

에릭 클랩튼이 기타를 놓을 뻔한 사연


지난 6월 중순, 국내외 언론들은 믿기 힘든 보도 하나를 흘린다. 다름 아닌 에릭 클랩튼이 말초신경병증으로 더 이상 기타 연주를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뉴스를 이야기로 만들어 먹고 살아야 하는 언론의 속성상 과장이 좀 섞인 것일지라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는 없는지라, 해당 보도는 전세계 에릭 클랩튼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부화뇌동 말고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에 선 나 같은 사람도 온 신경이 몸 밖으로 드러난 것처럼 아프다는 에릭의 인터뷰 앞에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기타리스트가 손가락을 쓸 수 없다면 그것은 사망선고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layla’를 더는 연주할 수 없는 에릭 클랩튼.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에릭 클랩튼이 말초신경장애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부위는 손이 아닌 다리 쪽이었다. 지난 7월 말경, 외신은 이 내용과 더불어 블루스 내음 물씬 날 것이라는 롤링 스톤스의 새 앨범에 에릭이 참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럼 그렇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 영웅이 그리 허망하게 기타를 놓을 리 없었다. 이 앨범 [I still do]가 에릭 클랩튼의 마지막 앨범이 될 뻔한, 꽤 강력한 내막의 에피소드는 그렇게 가까스로 일단락 되었다.


이번 작품은 겉으론 클랩튼의 스물 세 번째 솔로 앨범이지만 따지고 보면 오리지널은 거의 없는, 차라리 커버 앨범이라 불러야 더 어울릴 결과물이다. 가령 냇 킹 콜과 레이 찰스도 영향 받은 블루스 싱어송라이터 르로이 카의 스탠다드 ‘alabama woman blues’로 문을 여는 신작은 클랩튼의 영원한 '워너비' 제이제이 케일의 곡 두 트랙을 비롯, 스킵 제임스와 로버트 존슨의 델타 블루스, 밥 딜런의 모던 포크, ‘little Man, you've had a busy day’ 같은 오래 된 모던 보컬 송, 그리고 진짜 먼 과거에서 온 트래디셔널 넘버 ‘I'll be alright’ 등 에릭이 작곡에 직접 참여했거나 다른 사람에게 받은 세 곡을 빼면 거의가 철저하게 과거를 향하고 있다. 그 안에서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을 오가며 울어대는 에릭의 기타는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고, 폴 카락Paul Carrack의 알싸한 하몬드 오르간과 크리스 스테인톤Chris Stainton의 걸쭉한 건반 연주는 더크 파웰Dirk Powell의 아코디언, 데이브 브론즈Dave Bronze의 베이스와 아련한 수작을 부리며 에릭 클랩튼의 음악적 짐 정리에 큰 보탬을 주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 풍성하고 구수한 앙상블은 시작부터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 글린 존스Glyn Johns. 보즈 스캑스, 이글스, 더 후, 조 새트리아니 같은 굵직한 뮤지션들의 음반을 프로듀싱한 그는 명작 [Slowhand]와 범작 [Backless]에서 이미 클랩튼의 음악 세계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로, 이번 앨범 역시 글린의 손을 거치며 치킨 주문의 그것 마냥 라이브와 스튜디오 느낌 사이 ‘반반’의 균형을 가질 수 있었다. 20세기 초 팝 송라이팅 듀오 어빙 카할Irving Kahal과 세미 페인Sammy Fain의 ‘I’ll be seeing you’를 하품하듯 여유있게 부르는 에릭의 마지막 인사에서 그 균형은 그윽하게 정점을 찍는다.


I still do.

앨범 제목은 말하고 있다. 에릭 클랩튼이 지난 50 여년 동안 자신의 음악을 쓰고 남의 음악을 재해석 하는 작업을 계속 해왔고 또 지금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데서 ‘I still do’라는 타이틀은 어떤 안도와 뭉클함을 동시에 건네준다. 여전히 이처럼 훌륭한 연주와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기타를 내려놓았다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컸을 터. 마치 심장을 도려내는 느낌으로 팝, 블루스 팬들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많은 명인들이 별이 되어 사라져간 2016년. 앞으로 16년 사이, 우린 그보다 훨씬 많은 명인들을 떠나보내야 할 테지만 부디 버디 가이와 에릭 클랩튼 만큼은 호상好喪으로 보내고 싶다. 비비 킹처럼, 그 전까진 자신들의 기타를 손에서 놓는 일 따윈 없길. 에릭의 쾌유를 빈다.  


* 이 글은 대중음악 잡지 <파라노이드(Paranoid)>에도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Zakk Wylde - Book of ShadowsI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