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마이클을 추억하며
프린스, 데이빗 보위, 글렌 프레이, 레너드 코헨, 그렉 레이크 & 키스 에머슨. 2016년은 음악 팬들에겐 실로 잔인한 해였다. 각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거장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해에 운명을 달리 한 이 일은 차라리 불가사의에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이 잔인한 해를 6일 남겨둔 지난 12월25일. 또 한 명의 거장이 세상을 떴다는 뉴스가 속보로 전해졌다. 80년대 왬(Wham!)이라는 듀오를 이끌며 마이클 잭슨과 함께 팝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곡을 4곡이나 쏟아낸 솔로작 [Faith]로 데뷔 후 자타공인 세계 최고 싱어송라이터 자리에 올랐던 사람. 바로 조지 마이클이다.
조지 마이클은 글쓴이에게 팝의 매력을 알려준 첫 뮤지션이었다. 싱그러운 ‘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처음 듣고 들뜬 기분을 느낀 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글쓴이에겐 필연의 감정, 감성이었다. 제목 그대로 자유로움이 흥건했던 ‘Freedom’의 건반 터치, 알싸한 맛이 있었던 어덜트 컨템포러리 ‘Careless Whisper’의 슬픈 멜로디는 미지에 머물러 있던 성숙의 경지에 어린 나를 조용히 데려가 주었다. 그러다 만난 ‘Faith’는 이제 가요보다 팝을 좀 더 열심히 들어야 한다는 종용처럼 나에게 다가왔고, 두 파트로 나뉜 ‘I Want Your Sex (Parts I & II)’의 훵키 그루브와 그 반대편에 선 ‘One More Try’, ‘Kissing a Fool’의 고독한 낭만은 내가 팝 음악을 평생 들어야 할 것 같은 예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25년을 나는 정말로 해외 대중음악을 쉼 없이 들어 급기야 그 음악에 관해 쓰는 사람이 되었다. 조지 마이클은 결국 글쓴이의 취향을 넘어 글쓴이의 인생에 관여한 뮤지션이었던 셈이다.
그는 작곡도 잘 했지만 노래도 잘 불렀다.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함께 부른 엘튼 존과 추모 공연에서 마이클이 직접 불러 바친 ‘Somebody to Love’의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 그리고 모타운의 보물 스티비 원더와 파워 재즈 보컬리스트 아레사 프랭클린을 모두 장착한 그의 탁월한 성대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팝 보컬의 최고봉이었다. 그러므로 조지 마이클은 스튜디오 버전보다 라이브 버전으로 들어야 했던 사람이다. 그 섬세한 감정 몰입, 디테일한 기교, 비밀 같은 운치는 숨소리까지 잡아내는 라이브에서야 비로소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순간, 조지 마이클의 비현실적인 발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동료 평론가의 감탄이 불현듯 스친다. 프레디 머큐리와 더불어 모창이 가장 힘든 보컬리스트로 세상이 그를 꼽는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조지 마이클은 팝이었고 팝은 곧 조지 마이클이었다. 그것은 마이클 조던이 농구였고 펠레가 축구였던 것과 같은 의미였다. 많은 거장들이 세상을 등진 2016년. 그것도 빅 히트곡 ‘Last Christmas’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진 그날에 조지 마이클은 거짓말처럼 자신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향년 53세. 2년 전 [Symphonica]를 들었을 때만 해도 이런 허무한 죽음은 감히 생각도 못했던 터였다. 2016년은 팝이 죽은 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