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P John Wetton
어느 음악 장르에나 그 장르를 대표하는 인물 또는 팀이 있게 마련이다. 블루스 하면 비비 킹, 로큰롤 하면 엘비스 프레슬리, 일렉트로닉 하면 다프트 펑크, 브릿팝 하면 오아시스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어제 세계 음악 팬들은 대장암에 무릎 꿇은 또 한 명의 장르 개척자를 떠나보내고 말았다. 존 웨튼(John Wetton). ‘Heat of the Moment’와 ‘Sole Survivor’, ‘The Smile Has Left Your Eyes’로 유명한 아시아(Asia)를 비롯 킹 크림슨, 유라이어 힙, 유케이(U.K.) 등 굵직굵직한 밴드를 두루 거쳤고 두 브라이언(Brian Eno, Bryan Ferry)과 록시 뮤직의 기타리스트 필 만자네라와도 교류한 그는 존재만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변했던 거장이었다.
아시아는 라인업이 너무 화려해 눈 둘 곳을 찾기 힘든 슈퍼 밴드였다. 예스(Yes)의 스티브 하우(기타, 보컬), 버글스(The Buggles)의 제프리 다운스(키보드, 보컬), 그리고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칼 파머(드럼)가 존 웨튼(보컬, 베이스)과 함께 했는데 이는 에릭 클랩튼,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가 포진하고 있던 크림(Cream)에 비할 만한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82년 3월에 발표한 아시아의 데뷔작은 그대로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라 9주를 머물렀고 이는 결국 황금기가 지난 프로그레시브 록의 생명 연장을 뜻했다. 킹 크림슨의 아주 중요한 두 앨범 ‘Larks' Tongues in Aspic’과 ‘Red’에 존 웨튼이 있었으며, 제대로 평가 받진 못했지만 유라이어 힙이 아직 짱짱했던 시기 발매된 ‘Return to Fantasy’와 ‘High and Mighty’에도 웨튼은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그는 물론 솔로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예스 출신 팔방미인 빌리 셔우드(Billy Sherwood)와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가 힘을 실어준 ‘Raised in Captivity’는 그 대표작이다.
우아하고 장엄한 존 웨튼의 목소리 그리고 작곡 스타일은 아시아의 낙원 같은 사운드에 피를 돌게 했다. 어린 시절 가족 성가대 연주를 계기로 손에 잡은 베이스는 그의 주특기였고 ‘Starless’ 가사를 쓴 문학 감성과 함께 가장 훌륭한 자신의 표현 수단이 되었다. 그가 없는 아시아가 브래드 델프 없는 보스톤(Boston)인 것처럼 존 웨튼이 빠진 프로그레시브 록계는 겨울 가지 마냥 앙상해진다. 존은 로저 워터스 만큼 귀한 뮤지션이었을뿐더러 아시아는 핑크 플로이드와는 또 다른 프록 밴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의 부재는 곧 프로그레시브 록의 황혼이다.
지난해 그렉 레이크와 키스 에머슨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칼 파머의 심정은 지금 어떨까. 고 신해철은 자신이 그리도 좋아했던 영웅과 천국에서 ‘Only Time Will Tell’, ‘The Heat Goes On’을 합주하고 있을런지. 수많은 거장들이 연기처럼 사라진 지난해 부고들로 단련이 되었으리라 생각했건만 이별은 언제나 가슴 아프다. 좋은 음악 들려주고 남겨준 고인에게 감사를 전하며 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