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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Feb 15. 2017

최고 세션 베이시스트, 나단 이스트

2집 발매 기념 내한공연


‘곡즉전(曲則全)’을 다룬 노자의 [도덕경] 스물두째 장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구부리면 온전해지고 휘면 펴지게 된다.

패이면 꽉 차게 되고 낡으면 새로워지며 줄이면 얻게 된다.
자신의 관점으로 보지 않기에 최고 인식에 도달하고
자기를 옳다고 하지 않으니 오히려 빛나게 되며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 공이 있게 된다.


일(一)로써 천하의 통치방식을 삼는 성인을 말하며 노자는 저와 같이 썼다. 나는 묵묵히 발언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스스로를 드러내는 베이스라는 악기의 운명이 꼭 저와 같다고 생각했다. 멜로디 악기와 리듬 악기를 잇거나 엮으며 비로소 존재를 뽐내게 되는 베이스의 가치 또는 매력은 산화한 끝에 온전해지는 바로 그 역설의 원리에 있다고 나는 보았던 것이다.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엘튼 존, 스팅 등 팝 거장들부터 케니 로긴스의 ‘Footloose’와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까지 지난 40여 년 동안 무려 2,000장이 넘는 앨범 및 싱글들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희대의 베이시스트 나단 이스트는 그 베이스의 역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응용할 줄 알았던 사람이다. 곡에 잘 어울리면서 곡을 뒷받침 해주는, 그러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노트를 추구하는 이스트의 플레이는 빅터 우튼(Victor Wooten)이나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 같은 초절기교 테크니션들보단 타워 오브 파워(Tower of Power)의 프랜시스 로코 프레스티아(Francis 'Rocco' Prestia)나 스틸리 댄(Steely Dan)의 척 레이니(Chuck Rainey)에 더 가까웠다.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나 레이 브라운(Ray Brown), 론 카터(Ron Carter) 같은 더블 베이시스트들로부터 어쿠스틱 베이스의 묘미를 파악한 이스트는 돌출과 고립을 지양하고 어울림을 지향하는 플레이로 자신의 연주 체질을 키워나갔다. 바로 제임스 제머슨(James Jamerson)과 폴 맥카트니(Paul McCartney)의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를 그가 좋아하는 이유다.


첼로에서 베이스로 악기를 바꾸고 16세 되던 때 배리 화이트(Barry White)를 만나 뮤지션으로서 첫 기회를 잡은 이스트는 자신의 연주에 흥미를 가진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러브콜 한 통으로 인생이 바뀐 사례다. 그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장르 편식을 한 적이 없다. 자신에게 음악 스타일을 맞추지 않고 스스로를 음악 스타일에 맞추었다. 그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Unplugged]에서 ‘Tears in Heaven’을 연주한 것이 아닌 ‘Tears in Heaven’이 자신을 연주했다고 말한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구부려서 온전해지는 베이스의 역설은 곧 이스트의 연주 철학이었던 셈이다.


일일이 크레딧을 뒤적이며 연주자 명단을 확인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일반 대중에게 나단 이스트가 알려진 계기는 26년 전 데뷔한 포플레이(Fourplay)라는 슈퍼 재즈 쿼텟에서였다. 건반에 밥 제임스(Bob James), 기타에 리 릿나워(Lee Ritenour), 드럼에 하비 메이슨(Harvey Mason)이라는 숨 막히는 라인업은 베이스에 나단 이스트라는 화룡점정을 찍어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사운드와 연주 모두에서 컨템포러리 재즈 퓨전의 정점을 들려준 데뷔작과 3집 [Elixir]는 여태까지도 그들 대표작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비록 기타리스트 자리가 조금 위태롭긴 해도 나머지 멤버들은 망부석처럼 각자 자리를 지키며 살아있는 전설이 되기를 꺼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나단 이스트는 그것이 비즈니스에 기반 한 타인의 의뢰이든 자신이 주도하는 예술 창작의 과정이든 철두철미한 플레이를 펼치면서도 항상 겸손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훌륭한 연주자라 할 수 있다. 타고난 성정인 것인지 불거지는 것 보단 스미는 쪽을 더 좋아하는 이스트는 그 흔한 솔로 데뷔도 50년에 가까운 프로 생활을 해온 지난 2014년에 겨우 했다. 포플레이 데뷔작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101 Eastbound’를 비롯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빅히트 싱글 ‘Sir Duke’와 스티비가 직접 피처링 한 ‘Overjoyed’, 마이클 맥도날드(Michael McDonald)가 마이크를 잡은 밴 모리슨(Van Morrison)의 커버곡 ‘Moondance’, 이스트에게 큰 영광을 안겨준 프랑스 일렉트릭 듀오의 이름을 곡 제목으로 쓴 ‘Daft Funk’, 에릭 클랩튼이 가세한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의 ‘Can't Find My Way Home’, 그리고 나단 이스트의 아들 노아 이스트(Noah East)가 피아노를 연주한 비틀즈의 ‘Yesterday’ 등 그 앨범에는 이스트의 베이스 인생이 수줍게 요약되어 있었다. 차트에서 반응과 대중의 반응, 평단의 반응이 두루 좋았던 데 힘을 얻었던 걸까. 이스트는 1년 뒤 오랜 벗 밥 제임스와 콜라보 앨범 [The New Cool]을 내고 2년을 준비한 끝에 두 번째 솔로 앨범 [Reverence]를 발매했다.

 

마치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의 그것처럼 이번엔 자신의 마당발을 제대로 보여주려 했는지 참여 뮤지션들의 면면은 1집에 비해 꽤 호화롭다. 이스트가 흠모했던 베이시스트 버딘 화이트(Verdine White)와 보컬리스트 필립 베일리(Philip Bailey)가 우선 눈에 띄고 이스트와 오랜 연을 이어오고 있는 필 콜린스(Phil Collins)와 에릭 클랩튼,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대표작들에서 맹활약한 기타리스트 폴 잭슨 주니어(Paul Jackson Jr.)의 이름도 못지않게 부각되어 보인다. 여기에 가스펠 싱어 루벤 스투다드(Ruben Studdard)와 욜란다 아담스(Yolanda Adams)가 각각 ‘Why Not This Sunday’, ‘Feels Like Home’에서 마이크를 잡았고 스티비 원더, 토토(Toto)와 투어를 함께 돈 키보디스트 그렉 필린가네스(Greg Philinganes), 캐나다 출신 팝 재즈 싱어송라이터 니키 야노프스키(Nikki Yanofsky)도 ‘The Mood I’m In’이라는 곡으로 이 앨범의 무드에 일조했다. 이스트의 아들 노아는 지난 앨범에 이어 이번에도 아버지를 도와 고전 ‘Over the Rainbow’를 위해 피아노에 앉았고 피아노는 다시 거장 칙 코리아(Chick Corea)에게로 가 ‘Shadow’라는 곡을 연주해달라고 졸랐다.



모타운의 영웅 스티비 원더는 ‘Sir Duke’에 이어 ‘Higher Ground’로 다시 인용되면서 허비 행콕(Herbie Hancock)만큼 이스트에게 특별한 존재임을 재삼 확인케 했다. 무엇보다 이번 앨범에는 패티 오스틴(Patti Austin)이 우연히 테이프를 발견해 26년 만에 빛을 본 얼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Serpentine Fire’가 수록되어 있어 그 가치를 더하는데, 91년 당시 참여한 에릭 클랩튼과 필 콜린스 파트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필립 베일리의 보컬과 버딘 화이트의 베이스 연주를 입혀 최종 완성하였다. 이 앨범은 1월27일 발매와 동시에 노라 존스(Norah Jones)의 야심찬 복귀와 토니 베넷(Tony Bennett)의 90세 생일을 무색케 하며 빌보드 컨템퍼러리 재즈 차트 1위에 올랐다. 물론 이 모든 양질의 결과물 그 뿌리에는 심줄 마냥 불뚝거리는 나단 이스트의 섬세한 연주가 있다.

 

현재 나단 이스트는 두 번째 솔로 앨범 발표와 함께 아시아 투어를 예정하고 있는데 포플레이로서가 아닌 솔로로서 오는 2월26일 한국도 방문해 공연을 펼친다. 솔로 데뷔작을 수놓았던 ‘Daft Funk’와 ‘101 Eastbound’, ‘Sir Duke’와 ‘Madiba’를 포함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의 훵키 기타에 그루브를 보탠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Get Lucky’, 그리고 신작에 수록된 곡들(‘Lifecycle’, ‘Serpentine Fire’, ‘Cantaloupe Island’, ‘Happy’ 등) 전반을 그날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를 찾으면 들을 수 있다. 현존하는 최고 세션 베이시스트의 진가를 확인하고 싶다면 후회 없을 공연이 되리라 감히 예상해본다.



Nathan East BEST3


Anita Baker, [Compositions] (1990)

알앤비 싱어 애니타 베이커의 네 번째 앨범에서 나단 이스트는 재즈 팝 베이스를 어떻게 연주해야하는지 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주인공인 애니타 주위를 소심하게 맴도는 듯 보여도 그의 연주는 애니타의 젖은 목소리를 끊임없이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명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얼 클루(Earl Klugh)와 이번 두 번째 솔로 앨범까지 인연을 이어온 그렉 필린가네스(건반)의 연주는 이스트의 것과 어울려 당시로부터 1년여 뒤 선보일 포플레이 사운드의 힌트를 넌지시 던지고 있다. 이는 정작 이스트 본인은 모르고 있었던 차분하고 깔끔한 베이스 연주의 표본이 현지 음악애호가들 사이에서 잊히지 않고 회자된 끝에 의미를 갖게 된 사례이다.


Fourplay, [Fourplay] (1991)

포플레이 음반들은 두루 좋고 리 릿나워와 래리 칼튼(Larry Calton) 중 누가 더 좋으냐를 묻는 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류 우문이므로 이 추천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포플레이 하면 이 앨범이다. 리 릿나워의 마지막 흔적인 [Elixir]와 래리 칼튼, 척 로브(Chuck Loeb)의 흔적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적어도 나단 이스트의 존재감을 제대로 느끼려면 이 앨범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은은한 달빛 같은 사운드, 은근히 살벌한 멤버들의 기교가 깔끔함과 세련미가 생명인 재즈 퓨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아름답게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그 길의 중심에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us)를 동경하는 이스트의 뚝심 있는 베이스 라인이 있다.


Eric Clapton, [Unplugged] (1992)

이 앨범은 에릭 클랩튼의 것이지만 이 공연은 나단 이스트의 것이기도 하다. 나단 이스트의 베이스가 없다면 에릭의 하염없는 블루스 여행은 그 흥이 반감했을지 모른다. 이젠 전설이 된 영국 기타 영웅의 언플러그드 공연은 당시까지도 나단 이스트를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나단 이스트라는 베이시스트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스트 스스로도 과거를 돌아볼 때 이 공연 이야기를 늘 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자신이 느낀 뮤지션으로서 자부심이 남달랐기 때문일 거다. 듣는 것에서만 그치지 말고 이 라이브는 꼭 영상과 함께 감상하면 좋겠다. 에릭과 이스트의 연주 대화를 감상하기 위해선 그 방법이 최선이다.



* 이 글은 국내최초 MQS 전문서비스, 음악을 듣는 새로운 기준 그루버스(groovers+)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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