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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Feb 15. 2017

실수 연발, 그래도 그래미는 그래미다

제59회 그래미어워즈를 보고

음반기획자, 방송국 PD, 스튜디오 기술자 등 미국 대중음악 업계 종사자들이 포진해있는 미국 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Nation Academy of Recording Arts & Science, 이하 'NARAS')가 주최하는 제59회 그래미 시상식이 막을 내렸다. 1959년 5월4일 첫 시상식을 치렀으니 햇수로만 벌써 58년째다. 올해 역시 ‘General Field’라 일컫는 4개 본상(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최고 신인상)을 포함 총 100개 이상 부문 시상을 모두 마쳤는데, 큰 상을 앞에 두고 끊임없이 불거지곤 했던 인종 차별 논란에 이런 행사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무대 음향 사고까지 겹쳐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당연히 연출이었을 제임스 코든(James Corden)의 슬랩스틱 코미디마저 ‘저게 정말 연출일까?’ 싶을 만큼 이번 그래미어워즈는 여러 면에서 그 명성에 걸맞지 못했던 느낌이다. 



시작은 아델(Adele)이었다. 이날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를 모조리 휩쓸 ‘Hello’를 그는 관객을 모조리 삼킬 듯 큰 입으로 쏟아내었다. 아델은 이 외에도 ‘Hello’가 수록된 앨범 [25]로 올해의 앨범, 베스트 팝 보컬 앨범까지 수상하게 될 것이어서 그의 첫 무대는 사실상 자신의 영광을 위한 복선 같은 것이었다. 아델은 앨범 [21]과 싱글 ‘Rolling in the Deep’으로 6관왕을 차지했던 2012년 그래미어워즈에 이어 5년 만 다시 메이저 상 3개 부문 포함 도합 5관왕에 오르며 ‘본상 3개 부문 연속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그래미 역사에 남기게 되었다. 이는 과거 23회 시상식에서 앨범 [Christopher Cross]와 싱글 ‘Sailing’으로 최고 신인상을 포함 4개 본상을 모두 받은 크리스토퍼 크리스(Christopher Cross)의 기록, 그리고 한 시상식에서 무려 8개 부문 상을 휩쓴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의 기록에 버금가는 대기록이다. 아델은 현재 앨리샤 키스(Alicia Keys)와 함께 도합 15개 그래미상을 수상해 18개를 받은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과 22개 트로피를 가져간 비욘세(Beyonce)를 매섭게 뒤쫓고 있다. 



아델의 폭발적인 노래와 제임스 코든의 폭소를 부른 랩 퍼포먼스를 지나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의 첫 번째 시상 발표가 이어졌다. 다룬 부문은 평생 한 번 받는다는 최고 신인상(Best New Artist). 컨트리 팝 뮤지션 켈시 발레리니(Kelsea Ballerini)가 처음 영상을 통해 등장했고 일렉트로 하우스 듀오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의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가 뒤를 이었다. 다음은 시카고 출신 힙합 뮤지션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가, 내쉬빌 출신 팝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마렌 모리스(Maren Morris)는 그 다음을 장식했다. 후보 소개는 드러머 겸 래퍼 앤더슨 팍(Anderson Paak)을 끝으로 멈췄다. 그리고 이어진 제니퍼 로페즈의 수상자 발표. 발표 타이밍을 살짝 놓친 제니퍼의 입에선 챈스 더 래퍼의 이름이 나왔고 관객들은 환호했다. 이는 약간 의외의 수상이었는데 컨트리(=백인)에 관대했던 그래미어워즈의 오래된 정서를 살짝 배반하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는 NARAS 회원들의 들어가는 나이에 비례하는 그래미의 보수 성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물론 올해의 앨범을 아델에게 빼앗긴(?) 비욘세와 비욘세의 수상을 예상한 사람들 입장에선 그다지 파격적인 결과는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챈스 더 래퍼는 기세를 이어 자신의 작품 [Coloring Book]으로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와 함께 이번 시상식에 불참한 칸예 웨스트(Kanye West), 드레이크(Drake) 같은 거물들을 제치고 베스트 랩 앨범 상까지 거머쥐었다. 



챈스 더 래퍼가 랩에 가까운 수상 소감을 전한 뒤 마이클 잭슨의 딸 패리스 잭슨(Paris Jackson)이 무대에 올랐고 그의 소개로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바로 위켄드(The Weekend)와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콜라보 곡 ‘I Feel It Coming’이다. 차가운 얼음 나라에서 캐나다 알앤비와 프랑스 하우스 뮤직이 만나 펼쳐진 강렬한 레이저쇼를 뒤로 하고 이제 대배우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가 무대에 오른다.(그의 등장은 나중 비지스 헌정 무대의 예고편이 된다) 62세 나이가 무색하게 옛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중후한 매력을 뽐내며 그는 또 다른 무대를 소개했고 트라볼타에게 호명된 키스 어반(Keith Urban)과 캐리 언더우드(Carrie Underwood)는 그물 같은 네온으로 둘러싸인 환상적인 공간에서 ‘The Fighter’를 아름답게 소화했다. 이어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수상자 발표를 위해 닉 조나스(Nick Jonas)가 무대에 올랐다. ‘Closer’의 체인스모커스가 신인상 노미네이션에 이어 또 한 번 모습을 보였고 덴마크 팝 소울 밴드 루카스 그래함(Lukas Graham)의 ‘7 Years’도 후보에 올랐다. 뒤이어 드레이크와 리한나(Rihanna)의 ‘Work’, 시아(Sia)와 션 폴(Sean Paul)이 호흡을 맞춘 ‘Cheap Thrills’ 역시 상을 노려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지막 후보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트웬티 원 파일럿츠(Twenty One Pilots)의 ‘Stressed Out’. 그리고 해당 상은 마지막 후보에게 돌아갔다. 트웬티 원 파일럿츠 멤버 둘은 수 년 전 집에서 그래미어워즈를 TV로 보던 시절 복장을 이번 시상식에서 그대로 재현(바지를 내렸다)하며 누구든 자신들처럼 그래미 수상자가 될 수 있다고 시청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분위기를 넘겨받은 사회자 제임스 코든도 ‘하의실종’에 기꺼이 동참, 곧바로 에드 시런(Ed Sheeran)에게 카메라와 무대를 넘겨주고 이번 시상식 네 번째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유튜브에서 가사와 오피셜 뮤직비디오 각각을 더해 3억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 중인 ‘Shape of You’를 에드는 루핑과 기타 스트로크에만 기대어 불러냈다. 곧이어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배우 겸 가수 캐서린 맥피(Katharine McPhee)와 체인스모커스가 베스트 락 송 부문 후보를 말해주기 위해 무대에 섰고 스스로 ‘Blackstar’가 되어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데이빗 보위(David Bowie)를 첫 번째 후보로 소개했다. 뮤직비디오가 다소 섬뜩했던 라디오헤드의 ‘Burn The Witch’와 빠르고 짧은 메탈리카(Metallica)의 신작 첫 곡 ‘Hardwired’,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OST에 수록된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Heathens’가 그 뒤를 이어 흘렀다. 상은 데이빗 보위에게로 돌아갔다. 모두 쟁쟁한 밴드들이었지만 그 쟁쟁한 밴드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감을 주었을 고인의 수상에 후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시상식은 이런 식으로 2시간 30분여를 내달렸다. 출산을 앞둔 비욘세(그는 앨범 [Lemonade]로 베스트 어반 컨템포러리 앨범을 수상했다)가 'Love Drought'와 'Sandcastles'를 부르며 펼친 홀로그램 무대로 이날 가장 강렬한 공연을 펼쳤고 그래미에선 유독 상복이 없는 브루노 마스(Bruno Mars)는 신곡을 들고 온 케이티 페리(Katy Perry)와 시상식 전반을 매듭 짓는 한편 자신과 음악 혈통이 비슷한 프린스(Prince)를 기타 솔로까지 곁들여 추모했다. 베스트 아메리카나 앨범을 수상한 윌리엄 벨(William Bell)과 젊은 블루스 기타리스트 개리 클락 주니어(Gary Clark Jr.)는 앨버트 킹(Albert King)의 ‘Born Under A Bad Sign’을 흐드러지게 불렀으며, 이날 주인공 아델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팬들 곁을 떠난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의 96년작 [Older]에서 ‘Fastlove’를 골라 느린 스트링 편곡을 거쳐 그에게 바쳤다. 아델은 슬픔을 못 이긴 나머지 노래를 부르다 멈춘 뒤 다시 시작하기까지 했는데 이게 사람들에게 더 감동을 주었다. 



글머리에서 이번 그래미 시상식을 어수선하다고 했는데 그래도 그래미어워즈에는 글쓴이가 몸담고 있는 한국대중음악상이 참고할 것들이 많은 곳이다. 우선 거기엔 음악과 음악인을 존중하는 태도가 있고 창작을 위한 격려가 있으며 역사와 역사적인 인물들을 향한 경의, 흠모가 있다.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God Only Know’로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에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까지 두루 추모한 존 레전드(John Legend), 신시아 에리보(Cynthia Erivo)의 듀엣 무대는 그것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장르의 다양성이다. 더 쪼갤 수 없으리만치 시상 부문이 거의 완벽에 가깝게 분류돼 있는 모습은 차라리 경이롭기까지 한데, 그래미에선 그래서 클래식과 랩, 헤비메탈과 컨트리가 똑같은 ‘음악’이다. 다양하기 때문에 풍부해질 수 있고 풍부하므로 더 다양해질 수 있는 선순환이 그래미 시상식에는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과거 펄 잼(Pearl Jam)의 에디 베더(Eddie Vedder)와 툴(Tool)의 메이너드 제임스 키넌(Maynard James Keenan)이 그랬듯 그래미어워즈의 전면적인 상업성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조금이라도 상업적이지 않은 음악은 없다. 적어도 그 음악을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돈을 내고 듣게 된다면 그 순간 음악은 상업성을 띠는 것이다. 우리가 그래미어워즈에서 주목할 것은 그런 상업성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음악을 돕고 음악과 상생하는 바로 그 자세와 정신이다. 나는 우리 한국대중음악상과 한국 대중이 함께 그것을 배우고 참고해 우리의 대중음악을 더 풍성하게 가꾸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데뷔 30년을 훌쩍 넘은 메가데스(Megadeth)가 처음으로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 상을 수상하는데 메탈리카의 히트곡이 배경 음악으로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우리의 상황이 아니길 나는 바란다.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가 레이디 가가(Lady GaGa)와 공연하며 경험한 대답 없는 마이크가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향한 한국 대중의 대답이 아니었으면 싶다. 적어도 이 바닥에서 맥도 모르고 침통을 흔들려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황과 관심이다. 나는 아무리 실수가 있었어도 이번 그래미를 보며 그 내실 있는 상황과 대중, 뮤지션들의 관심이 마냥 부러웠다. 버려야 할 것도 많지만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은 시상식. 바로 그래미어워즈다.  



* 이 글은 국내최초 MQS 전문서비스, 음악을 듣는 새로운 기준 그루버스(groovers+)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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