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Feb 20. 2017

신스팝에 담근 T-Rex와 The Cure

The Dig [Bloodshot Tokyo]


‘Bloodshot Tokyo’는 뉴욕 출신 밴드 딕(The Dig)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다. 미니 앨범들까지 치면 다섯 번째 작품이다. 밴드 리허설 당시 스트록스(The Stokes)와 이웃 관계였던 이들은 배리 깁(Barry Gibb, 비지스)의 들뜬 팔세토와 마크 볼란의 쓸쓸한 미성을 함께 지닌 데이비드 볼드윈(David Baldwin)의 보컬에 신시사이저와 록 사운드를 버무린 음악을 들려준다.


시카고 웹진 컨스퀜스 오브 사운드(Consequence of Sound)의 평에 따르면 그 음악은 조이 디비전이 연주하는 서프록이요, 티렉스(T-Rex)와 큐어(The Cure)가 만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스웨덴 밴드 켄트(Kent)도 함께 얹고 싶다. 왜냐하면 딕이 사이키델릭 팝을 구사할 때 쓰는 신시사이저의 자욱한 공간감은 확실히 켄트의 그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서 꼽자면 ‘Over the Rails’ 같은 곡이 그렇다.


딕은 뉴욕 밴드이지만 그들 음악에는 맨체스터의 음울함도 함께 있다. 딕의 음악은 영미권 대중음악의 70년대와 80년대 사이에 머물면서 뒤틀리고 허물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2010년대에 유행하는 전자 음악의 가치도 잊지 않고 섞는다. ‘Bleeding Heart (You are the One)’과 ‘Tired of Love’가 그것을 잘 들려주고 있다.


'Simple Love' 뮤직비디오


이들은 일단 곡을 잘 쓴다. 음악 팬들이 무얼 듣고 싶어 하는지 딕은 알고 있다. 스타세일러 같은 ‘Self Made Man’이나 섬세한 ‘Let Your Lover Know’, 처량한 ‘Simple Love’ 같은 싱글 성향 트랙들은 하나 같이 밴드의 자신감을 반영해낸다. 무명 시절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카피 밴드 멤버가 이 밴드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 곡들이 가진 미드 템포와 디스코 비트, 파이프 오르간의 먹먹한 감성은 뉴메탈의 분노와는 사뭇 다른 바다 건너 먼 섬 같은 느낌을 준다.


딕은 ‘Reaction to Love’의 거침 보단 ‘Simple Love’의 감성을 더 내세워야 하는 밴드다. 뭇 사람들도 그 쪽을 더 선호할 것이고 지지할 것이다. 교회에서, 노숙자로 보이는 한 노인의 슬픈 지휘 아래 피어난 상상의 이미지들('Simple Love'의 뮤직비디오)이야말로 곧 딕의 음악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몰랐을 팀이지만 딕은 그리 풋내 나는 팀은 아니다. 올해로 데뷔 12년차 밴드다. 보통 밴드들에게 자신들 음악의 분기점이 되곤 하는 세 번째 앨범에서 이들 역시 분기점을 맞았다. 지켜볼 만한 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수 연발, 그래도 그래미는 그래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