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집 [Muggles' Mansion]
힙합 뮤직에서 비트는 MC들이 자신을 더 진지하고 신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필수 요소이다. 비트가 없는 랩은 즉흥연주가 거세된 재즈요, 일렉트릭 기타가 없는 록이다. 비트는 MC의 혀와 마이크가 잘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뿜어주는 윤활유와 같다.
여기 블랭타임이 피처링한 ‘Lemonade’라는 곡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비트 굽는 장인이 있다. 코드쿤스트(Code Kunst, 이하 ‘코쿤’). 우리말로 하면 ‘코드명: 예술’이라는 뜻이다. 발매 당시 신인이었음에도 꽉 찬 풀렝스를 고집한 1집 [Novel]과 보너스 트랙 포함 20곡을 꾹꾹 눌러 담은 2집 [CRUMPLE]로 평단과 힙합 팬들을 모조리 사로잡은 코쿤은 현재 국내 힙합 신이 가장 주목하는 비트 메이커다. 온전한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특정 레이블 소속을 거부해오던 그는 2015년 9월 비로소 YG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 하이그라운드와 계약, 이전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회사가 자신의 음악 활동에 도움을 주고, 스스로도 그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 비즈니스 관계를 맺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그의 평소 소신이 하이그라운드에는 적용된 것이다.
코쿤은 비트를 남발하지 않는다. 그의 비트는 특정 뮤지션을 겨냥하고 만들어지며 그래서 코쿤의 비트는 코쿤이 지목한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묵직하고 안으로 맴도는 느낌을 주는 음악을 지향하는 코쿤이 하이그라운드에서 첫 앨범, 통산으론 세 번째 앨범이 될 [Muggles’ Mansion]에 수록한 곡은 모두 15곡. 이는 그 동안 빚어두었던 30곡들 중 마음에 드는 소스를 추린 것으로 레이블메이트 오혁과 일리네어 레코즈 CEO인 도끼가 뭉친 ‘PARACHUTE’, 섹시 스트릿 크루 소속 랩스타 비와이와 연기자로도 유명한 YDG, 그리고 일렉트로 소울을 기반으로 독보적인 목소리를 쏟아내는 수란이 코쿤을 지원한 ‘Beside Me’는 앞서 싱글로 발매해 팬들의 호기심과 만족을 동시에 끌어냈다. 이 두 트랙은 수란의 직업 철학 즉,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느긋하면서도 강렬하게 들려주었다.
몽롱한 인트로 ‘Artistic’으로 시작하는 앨범은 코쿤의 지난 앨범들에서도 맹활약한 넉살이 ‘향수’라는 곡으로 등장하며 본격 시동을 건다. 잘 익은 미디엄 템포를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에 맞게 비트는 상쾌한 스네어와 또각거리는 림샷을 오가며 1, 2절 벌스를 다른 얼굴로 꾸며 넉살의 창의력을 자극한다. 염세적인 가사로도 희망을 품게 하는 커먼(Common)을 롤모델로 삼고 ‘Organ’을 자신의 인생 트랙이라 말한 넉살은 이번에도 ‘에디슨’ 만큼 멋진 트랙을 완성시켰다.
엘에이에서 날아온 핫 래퍼 루피와 지난해 9월 싱글 ‘Lime’으로 데뷔한 펀치넬로, 전작 수록곡 ‘나만의 룰’에 힘을 보탠 어글리 덕이 피처링 한 ‘Cruz’는 루피의 싱글 ‘Goyard’를 비튼 듯 늘어진 비트 위에서 세 래퍼가 세 사람이 아닌 하나의 완전체가 되어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여기서 랩은 성향이 다른 래퍼들이 건너건너 서로에게 스미며 마치 세 가지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의 것처럼 들린다. 곡 하나의 성격 보단 앨범 단위 완성도를 중시하는 코쿤의 습성에 따라 다음 트랙 ‘THIS IS’ 역시 ‘Cruz’의 흐린 비트를 그대로 잇는다. 코쿤이 좋아하는 둔탁한 드럼 소리가 고스란히 반영된 이 곡은 첫 EP [Hear Things] 수록곡 '1-2'에서 함께 한 씨잼이 마이크를 잡았다. 질척거리는 슬로우잼 비트에 맞서는 타이트한 플로우는 넉살과 더불어 코쿤이 왜 자신의 작품에 씨잼을 계속 초대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수수께끼 같은 ‘MORE FIRE’를 지나 흐르는 ‘Born from the Blue’는 지난해 [2 MANY HOMES 4 1 KID]라는 앨범으로 힙합 팬들을 사로잡은 저스디스가 피처링 한 곡이다. 그는 ‘19금’ 트랙들로 도배 했던 자신의 첫 정규 데뷔작 속 분노를 절반쯤만 선보이며 곡의 그루브에 좀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자칫 가사를 뭉갤 수도 있을 질겅이는 랩을 하면서 딜리버리에도 소홀하지 않는 모습은 래퍼로서 그의 장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밑그림 같은 간주(Interlude)를 보내고 마주하는 ‘Fire Water’는 코쿤의 소속사 대표인 타블로와 JYP의 지 소울이 함께 이름을 올린 트랙으로 이하이가 담담하게 삼켜낸 ‘X’, 오프온오프의 클로드가 지닌 섬세한 팔세토 창법을 들을 수 있는 ‘White AnxiEty’, ‘Don’t shoot me MAMA’를 소화한 카더가든(메이슨 더 소울의 다른 이름)과 함께 코쿤의 진한 알앤비 탐닉에 매듭을 지어주었다.
앨범 후반부를 달구는 ‘StrOngerrr’는 힙합 오디션 <쇼 미 더 머니> 인기를 선두에서 이끈 로꼬와 YG 소속 위너의 MINO가 등장하는 곡으로, <쇼 미 더 머니>와 관련한 로꼬 자신의 에피소드를 비롯 과거를 회상하는 랩이 느리고 잘디 잔 비트 위를 구른다. 더피(Duffy) 만큼 자신만의 확실한 목소리를 가진 이하이의 ‘X’를 지나 있는 ‘Lounge’에는 데뷔작 [EAT]로 일찌감치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화지가 참여했다. 어두운 비트와 무거운 플로우라는 화지의 취향은 전작의 ‘주소’에 이어 같은 취향을 가진 코쿤을 다시 한 번 필연적으로 만나게 한 것일 텐데, 두 사람이 각각 가진 텍스트 및 비트 디자인이라는 재능은 역시나 매끈한 결과물을 전제로 이번에도 마음껏 전시되고 있다.
코쿤은 언젠가 참여 뮤지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대변해준 앨범으로 [Novel]을 꼽았고, 반대로 자신이 그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준 앨범을 [CRUMPLE]이라고 했다. [Muggles’ Mansion]은 바로 그 중간, 그러니까 앨범의 주인과 손님들이 똑같이 서로를 자극하고 말하고 들어주며 그것을 세상에 풀어내는 작품인 듯 보인다. 변화에 대한 부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코쿤이 하이그라운드에 둥지를 튼 뒤 느낀 단점과 장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변화는 균형으로 수렴되었고 그가 가졌던 부담은 사운드의 최대치를 이끌어낸 이 앨범 앞에서 눈 녹듯 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다음 행보가 바람대로 ‘1MC 1PD’ 프로젝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새 레이블에서 첫발은 프로듀서 코쿤의 입지를 더 단단히 다져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나스(Nas)에서 맥 밀러(Mac Miller)에 이른 코쿤의 첫 번째 여정은 일단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