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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08. 2017

11년 만의 멜로디 침공

Grandaddy [Last Place]


음악에도 언어가 있다. 나는 그 음악의 언어를 멜로디라고 생각한다. 가사는 인간의 언어요 리듬은 음악의 뼈대라고 할 때 멜로디는 분명 듣는 우리에게 전해지는 ‘음악의 말’이다. “언어는 유한한 수단의 무한한 활용을 수반한다”는 노엄 촘스키의 말처럼 음악 멜로디도 마찬가지일 거라 나는 여태껏 믿어왔다. 멜로디는 정처 없지만 멜로디는 그만큼 무한한 것이다. 유한한 것의 무한성이라는 멜로디의 정체는 정확히 인간 언어를 닮아 있다. 멜로디는 분명 말할 줄 모르는 음악이 우리에게 전하는 음악의 언어이다.

내가 캘리포니아 인디 록밴드 그랜대디를 좋아하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것(멜로디)이다. 현지 평단이 이 밴드에 보낸 반응을 종합해보면 그들 음악에는 닐 영의 목소리, 위저의 멜로디, 라디오헤드의 무드, 엘리엇 스미스의 로-파이, 그리고 이엘오(Electric Light Orchestra)의 낭만이 모두 녹아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싱어송라이터 제이슨 라이틀(Jason Lytle)이 있다. 제이슨 라이틀은 퍼지(fuzzy) 기타로 흘리는 펑크(punk) 코드 위에 팝 멜로디를 잊지 않고 새긴다. 그리고 다양한 노이즈와 건반 소리를 중첩시켜 느슨하면서도 치밀한 공간감을 형성하는데 결국 이것이 그랜대디의 개성이 되었다.


이번 앨범 [Last Place]는 전작 [Just Like the Fambly Cat] 이후 무려 11년 만에 내는 작품이다. 전작을 발표한 뒤 팀은 한 차례 흩어졌었고 제이슨은 이혼을 겪었다. 음악을 계속 해나가기에 상황은 안팎으로 녹록지 않았다. 물론 제이슨은 따로 솔로 활동을 하며 자신의 넘치는 창의력을 세상에 바쳤지만 정작 팬들은 그가 이끄는 그랜대디 사운드를 더 원했다. [Last Place]는 바로 그 팬들의 공격적인 집착과 요구에 따른 결과물이다. 달라진 것은 없다. 기존과 다른 것이라면 제이슨이 과거 비틀즈가 썼던 V72s라는 마이크 프리 앰프(pre-amps)를 구입했다는 것과 아-하의 'Cast in Steel', 스웨덴 밴드 아마손(Amason)의 'Sky City', 그리고 오클라호마 출신 인디 록밴드 브론초(Broncho)를 근래 즐겨들었다는 사실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다. 제이슨은 옛날처럼 준비한 드럼 데모를 스튜디오로 가져갔고 그것을 들은 아론 버치(Aaron Burtch, 드럼)가 실제 연주, 녹음한 뒤 다시 제이슨이 각종 장비와 멜로디로 해당 리듬 라인에 살을 붙였다. 11년이라는 세월은 비록 길긴 했어도 그랜대디의 작업 습관까지 바꿀 순 없었다.


MGMT 같은 테마 멜로디와 정직한 8비트를 앞세운 첫 곡 'Way We Won’t'부터 신보는 이것이 그랜대디의 앨범임을 정직하게 들려준다. 신나면서 슬픈 음악을 하는 위저와 그랜대디를 비교하는 데 또 하나 단서가 될 'Brush with the Wild'도 좋고 켄트(Kent)와 펫 샵 보이스가 만난 듯한 'Evermore'의 통통 튀는 앰비언스도 좋다. 스타세일러 같은 'I Don’t Wanna Live Here Anymore'와 글썽이는 팝 멜로디가 듣는 이를 무너뜨리는 'That’s What You Get for Gettin’ Outta Bed'도 물론 아름답긴 마찬가지다. 이 연속된 멜랑콜리는 다음곡 'This is the Part'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아마도 'This is the Part'와 'A Lost Machine'이 전하는 뿌연 황홀경은 혹자가 이들을 ‘넥스트 라디오헤드’라고 말한 근거로서 충분할 것이다. 

'Jed the 4th'에서처럼 그랜대디 음악은 지글거리는 라디오 주파수에서 우연찮게 만나는 아주 괜찮은 음악 프로그램 같다고 생각했다. 신보를 아예 플레이 하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듣기 시작했다면 당신은 'Way We Won’t'부터 'Songbird Son'까지 세상 모른 채 푹 빠져들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역작 'The Sophtware Slump'를 들었던 당시를 닮았다. 버릴 곡이 없는 앨범. 우리는 이것을 '명반'이라 따로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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