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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pr 26. 2017

이용원 [No God]

일본을 향한 조선 펑크


대한민국에서 대중음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말을 또 할 수 밖에 없지만 힙합과 아이돌이라는 대중의 편향된 취향은 바위처럼 굳건하고 그 취향을 부추기는 방송과 사이트의 음원 송출 및 노출은 진실처럼 버젓하다. 특히 인디 쪽에서 자주 눈에 띄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비대중적 성취는 때문에 언제나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거나 아예 그 아래서 질식하고 만다.

껌엑스와 옐로우 몬스터즈(이하 ‘옐몬’)를 이끌고 20년 동안 밴드 음악을 고집해온 이용원은 그래서 대한민국을 음악하기 참 힘든 곳이라고 말한다. 가까운(또는 가깝기만 한)일본과 비교했을 때 그 참혹한 현실은 더 부각되는데, 지금은 잠비나이에서 활약 중인 과거 옐몬 드러머 최재혁의 말마따나 일본은 촌구석에 가도 라이브홀이 하나씩은 있고 작은 공연장의 조명이나 음향 수준도 굉장히 높아 그 단단한 인프라를 제대로 일구어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우리는 괜히 더 초라해지는 것이다. 마니아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이용원 같은 뮤지션이 일본을 향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해보이기까지 한다. 몸만 가서 어떻게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아닌 합리적인 비즈니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덤벼든 예상된 성공이었기에 그의 본격 일본 진출은 한국 대중음악계, 특히 풍요 속 빈곤을 절감 중인 우리 인디 음악계엔 굉장한 활력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물론 이용원은 껌엑스 시절부터 일본 펑크 신에서 꽤 알려진 사람이었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 펑크 밴드가 ‘알려졌다’는 뜻은 그 명성 뿐 아니라 물질적인 반향과도 맞물리는 것이어서 가령 껌엑스 2집 ‘Green Freakzilla’는 현지에서만 1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장르 관계가 블루스/로큰롤과 비슷한 하드코어펑크/헤비메탈을 접목했던 옐몬을 지나 이용원이 일본 무대를 중심으로 NOFX풍 멜로딕 펑크로 홀로서기를 시도한 일은 다 그런 맥락(무르익은 신(scene), 탄탄한 인프라, 대중의 적극적 반응)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들이다.

지난해 2월 말, 자신의 슬럼프를 아물게 해준 캐나다 밴쿠버를 기억한 솔로 1집 ‘Vancouver’ 이후 1년 여 만에 가져온 두 번째 앨범 ‘No God’. 허무주의를 내장한 니체의 오래된 유행어를 살짝 비틀어 자신의 무신론을 내세운(‘No Existence’) 이번 앨범에서 이용원은 손덕배(베이스)와 김상원(드럼) 대신 일본 하드코어펑크 지존으로 군림해온 코코뱃(COCOBAT)의 타케시(TAKE-SHIT, 베이스/프로듀서), 올드레코드의 대표 이용원과 비즈니스로도 잦은 교류를 가졌던 로코프랭크(LOCOFRANK)의 테츠야(TATSUYA, 드럼)를 영입해 연주 색깔과 국적에서 라인업을 싹 바꾸는 모험을 택했다.


그리고 들썩이는 첫 곡 ‘Bamboo’와 두 번째 곡 ‘God Distortion’의 그루브에서 나는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직감했다. 두 곡은 명백한 옐몬의 흔적이다. 하지만 이 앨범 전체가 옐몬의 앙금은 아니다. ‘Alone’이나 ‘Old Scar’ 같은 곡을 듣고 그린 데이를 언급하는 팬들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 이용원은 자신의 이름을 건 앨범으로 분명히 멜로딕/스케이트 펑크를 지향하고 있다. 프로듀서로서 앨범 전체 톤을 주무르는 타케시의 쇳내음 베이스 톤(‘Idiot Blues’)은 보컬과 기타에 집중해야 하는 이용원을 힘있게 받쳐주고 있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테츠야의 후련한 하드코어펑크 드러밍은 퍼즐의 마지막 조각 마냥 둘의 조화를 셋의 조합으로 보란 듯 이끈다. 

멜로디를 강조한 ‘Someday We Will Be OK’와 건스 앤 로지스식 기타 리프를 엔진으로 달고 이용원의 펑크 인생을 요약한 ‘I Was A Punk’는 누구라도 한 번 더 귀를 기울일만한 싱글 성향 트랙이며, ‘Full Garbage’는 이젠 중독이라 불러도 좋을 SNS의 병폐를 이용원 나름 시선으로 풀어낸 곡이다. 가사나 사운드에서 충분히 화가 나 있지만 심각하고 민감한 정치, 사회 주제들은 옐몬 때 이미 많이 다루었으므로 이 정도 분노는 차라리 커피숍에서 수다처럼 느껴질 정도다. 타케시와 테츠야의 합주로 페이드아웃 시킨 마무리가 재미있다.


한글 가사 없는 이용원의 두 번째 솔로작은 자신의 솔로 1집을 5천 장 넘게 구매해준 일본 팬들을 향한 적극적 화답이며 그들과 함께 뮤지션 이용원의 미래가 힘껏 뻗어나가리라는 강력한 암시이다. 심지어 바세린의 베이시스트 이기호가 디자인 한 앨범 재킷조차 일본 록팬들 성향을 제대로 꿰뚫고 있으니, 이 앨범은 일본 팬들을 향한 일본 팬들을 위한 앨범이라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멤버를 전원 일본의 실력파들로 교체한 것도 때문에 나는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전략인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무슨 국적 나누기냐 따질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으로든 물질로든 자신이 진짜 인정받는 곳에서 더 열심히 하려는 뮤지션의 입장을 나는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많은 사랑을 받으니 과연 음악도 더 나아졌다. 신(God)을 부정하는 앨범에서 신이 난다. 그래서 이 앨범은 'No Good'이 아니다. 'No Go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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