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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10. 2017

하드록계의 롤링 스톤스

Deep Purple [Infinite]


리치 블랙모어(기타)와 존 로드(키보드), 이언 페이스(드럼)가 일으킨 영국의 불세출 하드록 밴드가 딥 퍼플이라는 사실은 맞다. 하지만 아직도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를 잊지 못해 지금의 딥 퍼플을 2부 리그 쯤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나는 여긴다. 딥 퍼플 만큼 오래된 록 밴드 딕시 드렉스(Dixie Dregs)와 ‘The Introduction’, ‘High Tension Wires’ 같은 80년대 걸작 솔로 앨범으로 이미 비르투오소 반열에 올라 있는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는 96년작 ‘Purpendicular’부터 무려 21년간 딥 퍼플을 지켜왔고, 돈 에이리는 주다스 프리스트, 화이트스네이크, 레인보우 등 거물급 하드록/헤비메탈 밴드들에 한 번씩은 발을 담근 명 키보디스트이다. 드림 씨어터의 존 페트루치가 존경하고 하드록 건반의 전형을 제시한 이런 무지막지한 연주자들이 포진해있는 현 딥 퍼플 라인업을 단지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일은 때문에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딥 퍼플은 아직 건재하다.


밴드의 지금 라인업에서 원년 멤버는 드러머 이언 페이스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대수는 아니다. 더이상 ‘Child in Time’을 완창할 순 없지만 딥 퍼플 전성기를 이끈 이언 길런은 여전히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고 있고, 베이시스트 겸 프로듀서 로저 글로버 역시 밴드를 향한 한결 같은 애정으로 자기 자리를 꿋꿋이 지켜내고 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스티브 모스와 돈 에이리가 화석이 된 리치 블랙모어, 98년작 ‘Abandon’까지 딥 퍼플을 지켰던 존 로드(2012년 7월 사망) 포지션에서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다. 한마디로 딥 퍼플의 현 라인업은 토미 볼린(기타)과 데이빗 커버데일(보컬), 글렌 휴즈(베이스)가 완성한 ‘Come Taste the Band’(1975) 시절 부럽지 않은 짜임새다. ‘Speed King’과 ‘Highway Star’를 들을 순 없어도 ‘Bananas’(2003) 같은 수작은 계속 나오고 있다. 과거 핵심 멤버 둘이 없다고 해서 마냥 등 돌릴 일이 아닌 것이다.



‘Infinite’는 그런 딥 퍼플의 통산 20번째 정규 앨범이다. 경쾌한 도어스 커버 곡 ‘Roadhouse Blues’까지 포함 총 10트랙을 담은 이번 앨범에서 딥 퍼플은 한계를 거부하고 앨범 제목 마냥 무한을 지향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일단 지난 앨범 ‘Now What?!’(2013)이 마음에 들었는지 밴드는 이번에도 캐나다 프로듀서 밥 에즈린(Bob Ezrin)과 함께 작업했다. 그 결과 리듬의 나이테는 굵고 깊어졌고 기타와 키보드는 내실 있게 중후해졌다. 과거 만큼은 아니지만 이언 길런은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를 잘 알고 있으며, 로저 글로버도 베이시스트로서 연주 반경이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글쓴이는 마이클 브래포드가 프로듀싱 한 ‘Rapture of the Deep’(2003)을 좀 더 좋아하지만 어쨌거나 밴드의 선택은 이랬다. 더 분명하고 더 무겁고 더 여유로워졌다. 결성 50주년이 다 되어가는 밴드에게 여유라는 말은 하나마나 한 말이겠으나 드럼, 기타, 키보드의 완벽한 호흡이 있는 ‘All I Got Is You’ 같은 곡에서 들려준 이언 페이스의 재즈 드러밍은 그럼에도 그 말을 하도록 만든다.


잘 나가던 왕년의 록 스타들이 추억팔기와 우려먹기로 조금씩 무너져가는 것이 이 바닥 수순인 것을 감안해볼 때 여전히 양질의 오리지널리티를 제시하는 딥 퍼플은 그 자체 의미 있는 행보임에 틀림없다. 힘이 빠지고 열정이 사그라들만도 한데 음악을 들어보면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여 거기엔 어떤 감동마저 있다. 미 해안경비대 쇄빙선이 밴드명 이니셜 ‘d’와 ‘p’를 그리는 동시에 무한대(infinite)를 상징하는 모습은 그래서 듬직하다. 이들은 멈출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언 페이스가 68세,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는 올해로 71세다. 딥 퍼플은 지금 하드록계의 롤링 스톤스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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