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까락스/미셸공드리/봉준호, 2008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시작하는 미셸 공드리의 <인테리어 디자인>부터 예감되듯 도쿄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세 감독의 시선은 긍정적이지 않다. 레오 까락스의 작품 <Merde(일본 발음으로는 '메르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냉소와 분노를 넘어 일본인 전체에 대한 혐오에까지 이르고("일본 여자들의 눈이 여자 성기를 닮아서 싫다"는 메르도의 발언은 그 정점이다), 그나마 사랑으로 도쿄를 보듬는 봉준호가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도쿄에 대해 가장 너그러운 감독이 되어버린다.
도쿄는 어떤 도시인가.
흔히 예술가들에게 도쿄는 영감의 도시로 받아들여진다지만, 동서양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 3인방의 영화 예술에서 도쿄는 완전히 테러 당한다. 그들이 바라본 도쿄는 야칭(월세) 3만엔짜리 방에서 고양이 시체를 바라보며 살아야하는 곳이다. 시도 때도 없는 지진이 일어나는 곳이고 자신들의 진심을 철저히 히끼코모리(引きこもり) 시키며 사는 사람들의 도시이며, 신의 아들임을 자처하는 광인(狂人)의 손으로 수류탄 세례를 퍼부어야 하는 전범 국가의 수도이다. 작품 형태로 도쿄가 영상화 된 것 자체가 이미 예술의 영감이 되었다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 도쿄가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유연하게 부정되고 있음은 어쨌거나 사실이다.
예술 작품이 예술로서만 받아들여지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 안에 현실과 진실을 담고 있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받아들이는 같은 현실의 사람들(특히 도쿄에 사는 일본인들)은 그 영화를 예술로만 볼 수가 없다. 코딱지만한 방을, 그것도 몇 날 며칠을 전전하며 구하러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 잠자다 방이 흔들려 깨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2차 대전을 체험한 사람에게 이 영화는 무섭고 잔인한 거울이 된다. 순간 스크린은 단순한 물질적 차단물이 되고 일본 관객들은 그들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인>의 예술 감독이 영화 속 연기(smog)를 극장 안에서까지 실제 재현한 것은 그래서 제법 상징적인 퍼포먼스가 된다.
영화 속 배경은 현실이며 부분적으로 진실이다. 여자 주인공이 의자가 되는 특수효과, 교수형장에서 사라진 메르도, 지나치게 잦은(그리고 지나치게 심한) 지진을 빼고나면 그렇다. 결국 이것들은 진실과 거짓, 현실과 비현실의 작법으로 도쿄의 현재와 과거를 고발하는 영화들이다. 미래 도시 도쿄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정말 이 영화만 봐서는 도쿄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영화 <도쿄>에서 일본의 수도 도쿄는 끝도 없이 암울한 도시로 비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