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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31. 2017

가장 대중의 재즈

이진아 [RANDOM]


방송 연출의 본질은 왜곡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연출된 것이다. 심지어 뉴스와 다큐멘터리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연출 의도에서 벗어난 말과 행동, 정황은 편집이라는 처분에 따라 다시 처음 의도에 끼워맞춰진다. 때문에 방송이라는 매체에는 보는 이들의 비판적 수용이 반드시 첨부되어야 한다. 시청자는 그래야만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싱어송라이터 이진아는 2014년 11월23일 첫 방송된 ‘K팝스타 시즌4’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뮤지션이다. 자작곡 ‘시간아 천천히’를 듣고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라며 그 유명한 ‘그루브 망언’을 곁들인 박진영을 비롯 당시 이진아를 향한 심사단의 침 튀기는 극찬은 그 자체 화제였을 정도다칭찬의 전제는 이진아가 신인이라는 것이었다하지만 이진아는 방송 출연 1년 여 전 스스로 만든 10곡을 꾹 눌러담은 정규 앨범을 이미 가진 프로였다. 프로가 프로를 심사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데뷔작 제목처럼 이진아의 이력은 그 심사위원들 앞에서 정말 ‘보이지 않는 것’이었던 걸까. “어느 별에서 왔냐”는 박진영의 잇단 오버는 민망할 정도였다. 그렇게 이진아는 신인으로 연출된 ‘K팝스타’의 엄청난 수혜를 입고 유희열의 레이블 안테나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두 번째 데뷔를 한 것이다.


새 둥지로 와서 음악을 먹는 것으로 규정한 이진아. 급기야 자신의 음악 세계를 ‘진아食당’으로 구축해 안테나 데뷔 싱글 ‘애피타이저 (Appetizer)’를 내놓았다. 이것이 2016년 6월 일. 속에 담긴 두 곡 ‘배불러’와 ‘Like & Love‘엔 장난감 같은 음악, 알록달록 사탕 같은 부드럽고 밝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진아의 진수가 담겨 있었다. 그 음악 안에서 재즈와 팝은 다르지 않았다. 재즈의 변칙이 팝의 무난함을 압도하거나 팝의 가벼움이 재즈의 근엄함을 짓누르거나 하였다. 언젠가 짧게 커버한 안녕하신가영의 ‘솜과 사탕’이 그에게 꼭 맞는 옷처럼 느껴진 건 우연이 아니었다. 



미니앨범 ‘RANDOM’은 쉐프 이진아가 안테나에서 내는 본격 메인디쉬이자 데뷔작 이후 내는 두 번째 장편작이다. 장르는 재즈다. 앞서 팝과 재즈라고 했지만 사실 이진아의 음악은 재즈 속에 팝 성향이 녹은 것이라고 해야 더 맞다. 팝은 추상적이지만 재즈는 구체적이다. 14살 때부터 쳐왔다고 하니 이진아가 재즈 피아노에만 몰두해온 지도 올해로 벌써 12년째다. 대한민국에서 재즈 앨범이 이토록 환영 받는 일도 드물 터. 때론 방송의 왜곡이 한 뮤지션을 더 넓은 길로 이끌 때도 있는 법이다. 물론 거기엔 박진영의 혀가 아닌 유희열의 진심 어린 감격이 있었다.


새 앨범에서 이진아는 여전히 천진난만하지만 더 이상 ‘동요 같은 재즈’를 들려주진 않는다. 첫 곡 ‘계단’과 두 번째 곡 ‘RANDOM’에서 소녀 이진아는 숙녀 이진아로 거듭났다. 코드와 리듬은 계절 흐름을 거스르듯 봄여름가을겨울이 아닌 겨울여름가을봄 같이 뒤척이고, 또박또박 건반은 앳된 그의 목소리를 감싸며 공기처럼 머문다. 또 재즈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반길 ‘별것도 아닌 일’과 ‘Everyday’, ‘어디서부터’에선 옥상달빛과 가을방학, 낙타사막별이 중구난방 떠오르고 ‘밤, 바다, 여행’ 같은 곡은 고찬용과 김현철마저 그렸다 지운다. 예술가로서 작품성과 연예인으로서 대중성. 이진아는 두 가지를 고루 갖춘 음악으로 수 많은 아마추어, 프로 싱어송라이터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대중가수를 꿈꾼다고 아티스트가 아닌 건 아니라는 프롬의 말은 그 질문에 대한 이른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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