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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03. 2017

코지 파웰

#20 Rainbow 외, Cozy Powell


유행어 중 ‘아재’가 있다. 아저씨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지긋한 남성이 사고방식이 시대착오적이거나 일차원 썰렁 개그를 할 때 세상은 언젠가부터 아재라는 말을 공식처럼 쓰기 시작했다. 그 말 속에는 지금을 사는 청년들의 조롱과 지금을 살아내는 중년들의 자조가 뒤섞여 있다. 총알 같은 디지털시대 한복판에서 아재는 과거를 잊지 못하거나 현재와 과거를 잇지 못하는 남자들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들은 지난 영광을 양식 삼아 시대의 냉소를 냉소하는 최첨단 올드보이 집단이 되었다. 아재의 비극은 꼰대, 반대편 희극은 멘토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가로지른다. 그들은 멸종과 생성 사이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조금은 서글픈 존재들이다. 


코지 파웰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왕년에 록 좀 들었다 자부하는 아재들이 이구동성 최고로 치는 록 드러머다. 조이 조디슨이나 조지 콜리아스를 접한 젊은 록 팬들에게 코지는 자칫 화석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은 편견이다. 아재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실력마저 케케묵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코지의 드러밍은 파워와 기교 면에서 모두 역사적이었고 그 역사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는 위대한 드러머는 아닐지언정 중요한 드러머임엔 틀림없다. 록을 즐겨듣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의 드러밍은 지미 헨드릭스나 잭 브루스의 플레이만큼 절실한 이를테면 리듬의 마지노 선이다. 


코지 파웰은 느리면서 거대한 리듬 쌓기를 즐겼다. 그는 백비트 한 타도 목숨 걸듯 대하며 망설임 없이 그 리듬을 찢었다. 레인보우에서든 블랙 사바스에서든 그의 비트는 똑같이 무거웠고 장엄했다. 거기엔 그여야만 쏟아낼 수 있는 집중력이 서려있다. 가령 로버트 플랜트의 ‘Slow Dancer’에서 코지의 스네어톤은 그것이 필 콜린스의 것이 아님을 대번에 증명한다. 그 파괴적인 맛은 키스 에머슨, 그렉 레이크와 함께 연주한 ‘The Miracle’과 두 토니(토니 아이오미, 토니 마틴)와 어울린 ‘Headless Cross’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타격의 힘과 톤의 규모감에서 코지는 후배 드러머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존 본햄과 카마인 어피스를 흠모한 그의 취향을 돌이켜볼 때 존 템페스타가 코지를 카피한 일은 그래서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코지는 타이밍에서도 냉정했다. 무심한 듯 결정 짓는 심벌 가격(加擊)은 비명 같은 서스테인을 그렸고 손과 발, 발과 손을 넘나드는 찰나의 콤비네이션은 휘몰아쳐 엉기는 리듬에 파란을 일으켰다. 솔로작 [Over the Top]에서 ‘Killer’와 레인보우의 ‘Stargazer’에서 우직하고 현란한 필인을 들어보자. 물론 화이트스네이크의 [Slide It In] 시절 라이브 무대에서 그의 드럼 솔로도 빼놓을 수 없다. 생전 모터바이크와 자동차 레이싱을 즐긴 그답게 해당 연주들은 속도와 정확도의 극적인 반향, 북과 심벌들 사이 섬세한 견제를 힘있게 어우른다.



생전 60 여장 앨범들에 자신의 연주를 새긴 드러머. 이 얘기는 코지의 리듬이 얼만큼 붙임성이 좋았는지를 말해주는 수치일 것이다. 천하의 데이빗 커버데일과 제프 벡도, 마이클 쉥커와 브라이언 메이도 그의 연주를 탐냈다. 코지 자신이 커리어 중 최고 앨범이라고 말한 레인보우의 [Rising]은 리치 블랙모어의 것이기도 했지만 코지 파웰의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아재들은 바로 그 시절 코지 파웰 연주를 베스트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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