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Mr.Big, Pat Torpey
팻 토피(Pat Torpey)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4세. 사인은 2014년 7월부터 투병 사실을 알린 파킨슨병이다. 그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나는 2014년 미스터 빅 내한공연 때 보았다. 그 날렵하고 정교했던 꽃미남 록 드러머가 탬버린과 퍼커션에만 의지해 전시된 모습은 내 가슴을 찢어놓았다. 나는 임펠리테리 때부터 그의 팬이었고, 미스터 빅에 몸 담았을 때도 다른 어떤 멤버들보다 그를 주목해왔다. 마음이 너무 아파 그날 이후 다시는 미스터 빅 공연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무너져가는 내 드럼 영웅을 추억 속에 묻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젠 그 다짐도 부질 없어졌다. 팻 토피는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팻 토피는 과소평가된 드러머다. 그의 실력을 아는 사람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팻은 미스터 빅이라는 밴드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고 미스터 빅 때문에 과소평가 됐다. 잉베이 맘스틴에 대적할 수 있는 속주 실력을 갖춘 폴 길버트, 4줄짜리 베이스를 44가지 기교로 응징하는 빌리 쉬헌, 록에 소울(Soul)을 담글 줄 알았던 에릭 마틴까지. 말 그대로 ‘Big’들만 모인 밴드에서 상대평가의 맹점은 팻 토피를 겨냥했다. 자기 색깔이 분명했던 동료들에 비해 7살 때부터 갈고 닦은 그의 드럼 실력은 억울하게 퇴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팻은 그런 고만고만한 드러머가 아니었다.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에선 저 세 사람을 주목하더라도 ‘Colorado Bulldog’에선 팻 토피에 시선을 돌려야 맞다. 팻을 그저 금발의 ‘잘생긴 드러머’로만 알았다면 그건 당신의 오판이다.
팻 토피는 기본기가 매우 탄탄한 드러머다. 프로의 기본은 탄탄한 기본기이므로 이는 어쩌면 동어반복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탄탄한’ 앞에 ‘매우’라는 부사를 굳이 넣었다. 기본기가 탄탄한 드러머는 당황하지 않고 어떤 리듬에도 대처할 수 있다. 시쳇말로 ‘절지’ 않는다. 팻은 빠른 리듬에서도 느린 리듬에서도 여유있는 플레이를 펼친다. ‘Just Take My Heart’와 ‘Addicted To That Rush’에서 팻의 드럼에는 똑같은 평화가 녹아있다. 흔들리지 않고 서둘지 않는다. 패턴을 지키며, 설령 패턴을 벗어나더라도 이내 원점으로 돌아와 기본을 지킨다. 거기에 힘과 미모, 아이디어까지 첨부됐으니 과연 그를 흠모하는 뮤지션들이 적지 않았다. 임펠리테리는 물론 테드 뉴전트, 낵(The Knack), 리치 코첸, 라우드니스의 타키라 아카사키가 모두 그의 플레이를 탐냈다.
팻의 드러밍은 스튜디오 앨범의 정해진 라인보다 라이브에서 즉흥 연주가 더 좋다. 그는 드럼 솔로에서 진짜 자기 실력을 들려준다. 기본기가 낳는 화려함, 화려함 속 기본기가 무엇인지를 그는 현란한 손, 발놀림으로 증명하고 개척했다. 심지어 드림 씨어터에나 어울릴 3연음 고속 더블베이스를 밟으며 부르던 비틀즈의 노래에도 그 기본기는 붙박이처럼 있었다. 팻은 록 드럼계의 데이브 웨클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그의 실력이 궁금한 사람은 유튜브에 걸려 있는 조회수 19만1531회의 9분7초짜리 드럼 솔로 영상을 확인해보길 바란다. 이언 페이스의 날렵함, 존 본햄의 콤비네이션, 닐 퍼트의 창의성을 두루 갖춘 드러머 팻 토피의 전성기 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이제 그 모습을 자료로만 확인할 수 있다. 슬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