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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12. 2017

음악으로 보는 <곡성>

팎(PAKK) [살풀이]


"곡소리가 가득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고 부조리가 판을 치며 추악한 모리배들로 가득하다. 상처 입은 자들은 비루한 술잔을 기울이며 보이지 않는 내일을 안주 삼아 자위하지만, 슬픔은 분노를 넘어 살기를 품고 비수가 되어 서로에게 꽂힌다. 이 앨범은 현세에 가득 차 있는 악한 기운들에 대한 살풀이다." - 김대인

전달하고 싶은 의미는 있으나 그 의미는 듣는 이들 각자 몫이라고 밝힌 김대인이지만, 그는 팎(PAKK)의 첫 정규 앨범에 담은 ‘의미’를 저렇게 써두었다. 그 안에는 원인과 책임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세월호 침몰 사고를 비롯 민생보다는 제 안위가 우선인 정치인들과 먹고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백성들이 함께 있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도긴개긴인 미국과 북한이 있고 동네 집값 떨어진다며 특수학교를 배척하는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김지운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악마적 학생 폭력이라는 사회 현실이 있다.

김대인과 밴드 팎은 지금 그 모든 것들에 화가 나 있다. 세상의 불공평에 열불이 나고 비열한 모리배들은 처단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들은 덩어리져 곪은 울분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 화에 파묻혀 화에 지배되기보다는 화를 지배해 화를 해체시키려는 것이 이들의 의지이다. 그래서 잡은 컨셉이 바로 살풀이다. 그해 나쁜 운을 풀기 위해 벌였던 우리네 전통 살풀이춤을 이들은 록 음악에 과감히 접붙여 어두운 국운을 밝은 국운으로 이끌려 한다. 살풀이춤은 흔히 허튼춤이라고도 하지만 팎의 고민은 절대 허튼 것이 아니다.


앨범 ‘살풀이’는 사운드와 주제에서 일관되다. 이들 음악은 한마디로 포스트록(Post-Rock)과 그런지(Grunge)를 머금은 아시안체어샷이며, 판테라의 'Primal Concrete Sledge'를 떠올리게 하는 '살(煞)'의 메인 기타 리프 덕분에 헤비메탈 영역과도 긴밀히 엮인다. 왈츠 리듬에 국악 정서를 입힌 지난 곡 '벽사무'의 느낌 역시 이 앨범 곳곳을 이끼처럼 덮고 있다. 트랙리스트는 검무 동작을 하는 듯한 한자(漢字) 한 자씩을 쉼표 마냥 배치해 은근한 긴장을 노렸다. 또 연적(硯滴)과 여적(餘滴)으로 시작과 끝을 분명히 했고, 가사는 데뷔 EP 때처럼 대구법(비정해진 밤 비틀대는 발, 비참해진 숨 비루해진 술 - ‘곤(困)’)을 주로 써 언어의 보풀을 최소화 했다. 하지만 우리 귀에 그것들은 잘 들리지 않는다. 말이 없는 말이랄까. EP 수록곡 '수귀'의 가사처럼 이들의 외침은 우두커니 바라보다 아득하니 멀어지는 그런 것이다.

팎의 멤버는 세 명이다. 리더는 아폴로18과 해파리소년을 거친 김대인(기타, 보컬)이고 베이시스트 박현석, 드러머 김태호가 그와 뜻을 같이 했다. 세 사람이 뽑아낸 연주와 톤은 헐겁고 날쌔다. 세련미를 노려 조이고 기름 치지 않은 날것의 미덕에 이들은 소리색의 방점을 찍었다. 특히 스리슬쩍 음악에 숨을 불어넣는 악기로 간주되어온 베이스가 기타와 더불어 전면에 나선 모습은 살짝 낯설기까지 하다. 이는 의도적으로 뭉갠 드럼, 보컬의 답답한 아우성과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해탈하는 살풀이 풍경에 최적의 배경이 되었다. 앨범 허리에 있는 ‘협(協)’ ‘해(害)’ ‘악(惡)’ ‘겁(怯)’이 그것을 완강히 증명한다.



혜원 신윤복의 쌍검대무(雙劍對舞)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재킷 그림은 지금까지 말한 그 모든 것들을 압축하고 있다. 원작과 다른 점은 무녀로 변장한 두 기녀 중 한 명의 목이 뎅겅 허공에 떠 있다는 점뿐이다. 작품 전반에 드리운 죽음과 분노와 심판의 그림자. 음반 '살풀이'는 음악으로 보는 나홍진의 '곡성' 또는 박찬경의 '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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