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꽃-갈피 둘]
리메이크 앨범의 가장 큰 의미는 지난 좋은 음악을 지금 사람들에게 한 번 더 소개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잊힐 뻔한 명곡을 누군가 다시 들려줄 때 음악은 부활하고 부활은 감동이라는 영역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그 감동은 다루는 사람의 실력, 지명도에 따라 커지거나 아니면 잦아들거나 한다.
리메이크 앨범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한 뮤지션을 여러 뮤지션들이 추억하는 형태, 또는 여러 뮤지션들을 한 뮤지션이 기억하는 형식이다. 최근 데뷔 25주년을 맞은 서태지와 27주년을 맞은 공일오비를 후배들이 재해석 한 것이 앞의 예다. 반대로 김범수의 2005년작 ‘Again’이나 조규찬의 2008년작 ‘Remake’는 후자다. 리메이크 앨범은 이미 히트한 곡들을 다룬다는 데서 언뜻 성공이 보장될 것 같지만, 같은 이유에서 그것은 ‘우려먹는 추억팔이’로 싸게 취급될 수도 있다. 그래서 역시 중요한 것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리메이크 하느냐다. 리메이크 앨범의 성패는 언제나 그 사소해보이는 주체와 소재, 방법 사이에서 결정돼왔다.
여기서 아이유의 리메이크는 두 번째에 해당한다. 3년 전 봄, 조덕배의 ‘나의 옛날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가 선택한 8090 곡들은 산뜻한 편곡으로 새 생명을 얻어 0010 세대에 다시 소개되었다. 지난 시절 음악은 그렇게 요즘 젊음에게 어필했고 다시 태어난 곡들은 급기야 고전으로서 지위를 얻었다. 듣는 이들 사이에서 그 곡을 만들고 부른 사람들이 거장으로 재조명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유의 꽃갈피 시리즈는 어쩌면 기획만으로도 한국 대중음악 감상 문화의 풍요에 이미 기여했다. 고전과 거장을 향한 대중의 소극적인 관심이 일반적인 한국에서 이는 참 고마운 일이다.
꽃갈피 둘. 가을 문턱에서 양희은의 ‘가을 아침’을 첫 싱글 삼아 아이유는 또 한 번 자신의 음악 취향을 고백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양희은의 이슬같은 음색이 아이유의 동화같은 음색으로 대체된 순간 ‘가을 아침’은 완전히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단순함을 넘어 적막하기까지 한 도입부와 그 적막을 누그러뜨리는 정성하의 따뜻한 기타, 아이유의 포근한 목소리가 양희은과 이병우 듀엣을 가만히 되불러 이내 지워내었다.
리메이크 앨범이 의미를 갖는 또 하나 이유는 편곡이다. 리메이크라는 단어 뜻이 다시 만든다는 것이니 편곡은 어쩌면 리메이크의 본질일지 모른다. 지난 꽃갈피에서 아이유는 김완선과 김현식, 클론을 온전히 자기 식으로 해석했었다. 그것은 왜곡이 아닌 발전이었고 곡들에 대한 거듭된 발견이었다. 두 번째 꽃갈피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사가 좋아 선곡했다는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에는 원곡 속 상쾌한 비트 대신 강이채의 현학적 편곡이 들어섰다. 질러대며 들뜨던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는 편안하고 차분한 어반(urban) 느낌으로 되살아났으며, 이호준(작곡)과 박건호(작사)가 함께 쓴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는 아이유가 강조한 메인 리프, 가사 스토리, 코드 진행을 가장 절제되고 정제된 톤 안에 넣어 새로 버무렸다. 이어 듣게 되는 정미조의 ‘개여울’은 편곡 이전 선곡에서 의외인 곡으로, 지난번 김창완과 함께 부른 ‘너의 의미’에 버금갈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와 조용히 대비를 이룬다.
‘김광석’이라는 영화가 일으킨 사회적 파장, 때문에 음악이 음악으로만 들려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 끝내 누락된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들을 수 없음은 어쩌면 이 앨범의 슬픈 한계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유가 아니고선 만들어낼 수 없을 이 익숙한 신곡들은 그럼에도 시대와 세대의 구분을 넘은 희대의 명곡들로 우뚝 섰다. 글머리에 쓴 리메이크 앨범의 의미란 고로 이 앨범이 갖는 의미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