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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23. 2017

상업적인 원숙함

텔레플라이 [달빛에 눈먼 자들]


텔레플라이 하면 무림(武林)과 무릉도원(武陵桃源)이 함께 떠오른다. 전자는 힘과 호흡의 세계이고 후자는 이상향의 공간이다. 그들 음악은 두 세계를 오가며 무심한 듯 맹렬했다. 블루스와 록이 끈끈하게 공존하는 사이 길을 잃은 싸이키델릭은 허공을 맴돌았다. 삼인조의 연주 균형이 삼라만상을 불러냈던 기억. 텔레플라이 음악을 나는 그렇게 추억한다.


'달빛에 눈먼 자들'은 텔레플라이의 두 번째 미니앨범이다. 정규작들까지 치면 네 번째 작품이다. 밴드는 이 작품으로 “외로움과 회의로 얼룩진” 우리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재킷 그림을 살짝 보았는데 산맥처럼 일렁이는 밤 파도 위 거대한 갈매기가 날아오르는 반추상화였다. 검푸른 하늘, 갈매기 등에는 노란 눈썹달이 상처처럼 새겨져 있다.


첫 곡 ‘무중력’은 그런 반추상화로 현실을 반추하는 듯한 곡이다. 곡은 짧고 슬프다. 그러면서 희망적이다. 들뜬 목소리는 발라드라는 쉬운 길을 버리고 레게라는 까다로운 리듬을 받아들여 섬세하게 반전한다. 짧은 미니앨범에선 되레 이런 짧은 곡이 더 과감하게 들린다. 용기 있는 시도다.


밴드는 다음 곡 ‘구원’을 타이틀로 삼았다. 첫 곡에서 맛만 보여준 레게 리듬을 전면에 깔고 부르튼 싸이키델릭 기타를 작렬시킨다. 울부짖는 김인후의 블루스 기타는 인트로에서 오형석의 드럼이 가진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구원은 곧 사랑이다. 기도하듯 체념하는, 사랑하는 자의 쓸쓸한 독백이 후반부 코러스 화음과 더불어 썰물처럼 사라진다. 조금씩 대중에게 손짓하는 텔레플라이. 하지만 이 앨범엔 아직 ‘낭만적인 삶’이라는 곡이 남아 있다.


‘King of the blues’는 뼛속까지 블루스키드인 텔레플라이의 리더가 블루스라는 장르에 바치는 찬가다. 때로 사납게 몰아치던 기타 톤이 한편에선 평화롭게 흘러간다. “신의 사랑이 담긴 운명의 기타”를 안은 김인후는 배짱 두둑한 보컬을 구사했다. 오형석은 라이드 심벌과 하이햇을 오가거나, 앙다문 하이햇을 여닫으며 여전히 레게 리듬을 썰고 있다. 이쯤 되면 레게는 이 앨범의 주제다.


롤러코스터와 존 메이어, 심지어 이매진 드래곤스까지 떠오르는 마지막 곡 ‘낭만적인 삶’은 마치 텔레플라이의 다음 행보의 예고편처럼 들린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입체 코러스, 긍정적인 멜로디, 깜짝 놀래키는 현악 편곡은 작품 완성도를 결정적으로 높였다. 상업적인 원숙함이랄까. 앞으로 그들이 들려줄 음악의 전제로서 내가 떠올린 말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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