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on & Wine, Tori Amos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은 한 남자의 무대 이름이자 팀 이름이다. 그 남자의 본명은 Samuel "sam" ervin beam. 사람들은 줄여서 샘 빔(Sam beam)이라 부른다. [Beast Epic]은 바로 그 샘 빔의 신작이다. 팝 밴드 형식으로 요리한 [Ghost On Ghost] 이후 벤 브리드웰(Ben Bridwell)과 함께 만든 커버 앨범 [Sing Into My Mouth], 제스카 훕(Jesca Hoop)과의 콜라보 앨범 [Love Letter For Fire]를 지나 완성한 통산 여섯 번째 정규작이다. 눈 가린 털보 포크 뮤지션이 박제된 앨범 재킷에서 짐작되듯 이 앨범은 대단히 쓸쓸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를 멘 재킷의 남성은 한편으론 도인처럼, 달리 보면 시각장애인 같다. 천천히 시작하는 ‘Claim Your Ghost’가 설정한 방향은 바로 그 도인의 정처없음과 시각장애인의 체념을 동시에 머금었다. 소리는 따뜻하고 풍성하며, Sam의 목소리는 마치 글쓴이 옆에서 노래하듯 구체적이다. ‘About A Bruise’에서 상쾌한 밴드 연주, ‘Thomas County Law’에 먹인 관현악은 ‘Summer Clouds’가 간직한 고독의 예고편이다.
세월, 나이를 먹는다는 것, 우리의 몸과 마음이 시간에 강요당하는 방식에 관해 노래한 이 앨범은 자유와 속박, 좌절과 기쁨, 빛과 어둠, 비극과 희극이 마치 같은 것임을 말하려는 듯 들린다. 그 안에는 밥 딜런(Bob Dylan)도 있고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도 있으며 닉 드레이크(Nick Drake)도 있다. 샘이 좋아했던 J.J 케일(J.J. Cale)과 조니 미첼(Joni Mitchell) 역시 작품 구석구석을 맴돌고 있긴 마찬가지다. 잡을 수 없는 시간과 잡힐 듯한 세월이란 결국 같은 말이라는 사실을 우린 이 앨범으로 알 수 있다. ‘Call It Dreaming’의 맛있는 포크 멜로디가 대표하듯 샘 빔은 또한 멜로디를 포기하지 않았다. 서브 팝(Sub Pop) 레이블의 명반 중 하나로 후세에 건네질 [Our Endless Numbered Days]와 비교해 봐도 그 감각은 잘 보존되었다. 여기에 뮤지컬 같은 ‘Last Night’와 ‘Our Light Miles’에서 공간감은 Sam의 소리 빚기 능력이 경지에 이르렀음을 증명한다. 튀진 않지만 빈 곳을 어김없이 파고드는 피아노를 비롯 오토하프, 클라비넷, 신시사이저, 페달스틸 등 스무 가지에 달하는 악기들로 이처럼 초연한 사운드를 샘 빔은 기어코 만들어냈다. 악기들은 결국 버리기 위해 동원된 것들이다. 샘 빔은 그러모은 악기들로 덜어낸 소리를 통해 텅 빈 톤과 직면했다. 시간의 공허함, 세월의 덧없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데뷔 25년차. 올해로 열다섯 번째 작품이니까 거의 2년 마다 한 장씩은 내온 셈이다. 피아노를 주무기로 사반세기 자신만의 음악 기반을 다져온 토리 에이모스(Tori Amos)는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에 케이트 부쉬(Kate Bush)를 녹인 듯 세상과 격리된, 그러면서 세상과 닮은 음악을 들려준다. 피오나 애플(Fiona Apple)과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이 좇은 그 세계는 이번 작품의 ‘Broken Arrow’에서도 만날 수 있다. 죽음과 갱생을 모티프로 환상적인 보컬 어레인지 솜씨를 뽐낸 이번 앨범에서 나는 [From The Choirgirl Hotel]까지 누렸던 토리 에이모스의 90년대 전성기를 느낀다. 특히 ‘Up To Creek’에서 곡을 가지고 노는 대담한 조율력은 최소 5년은 더 연장해야 할 그의 전성기가 진행형임을 공공연히 암시한다. 쓰디쓴 환각의 목소리, 불안하지만 매력적인 그 음색이 피아노와 전기 기타, 일렉트로닉 비트와 스스럼 없이 어울릴 때 토리 에이모스의 음악은 비로소 만개한다. 가령 7분대 첫 곡 ‘Reindeer King’과 앞서 말한 모든 요소들이 녹아든 ‘Wildwood’ 사이에서 음악과 사람은 함께 취하는 식이다.
비요크(Bjork)와 피제이 하비(P.J Harvey)와는 또 다른 여성 뮤지션만의 섬뜩한 성찰이 그의 음악에는 있다. 마돈나(Madonna)가 불러도 어울릴 ‘Chocolate Song’, ‘Bang’에서 노래를 따라 길게 흐르는 일렉트릭 기타 솔로는 본작의 자랑거리다. ‘Climb’에서 피아노 연주와 토리 에이모스의 자랑인 메조 소프라노 보컬의 어울림 역시 신보를 두근거리게 만든다. 어렵지 않고 어둡지 않다. 토리 에이모스가 음악 좀 듣는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하지만 대부분 한국 대중이 잘 모르거나 이름 정도만 아는 이유는 그의 음악이 추상적이었고 집요하리만치 환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음반은 그런 면에서 친절한 축에 든다. 비록 ‘Mary’s Eyes’가 묵직한 클래시컬 바로크 챔버팝의 진수를 들려주며 앨범 문을 닫곤 있지만 Tori는 자신이 만든 멜로디,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은 메시지로 듣는 이들 가슴을 충분히 건드려 주었다. [Under The Pink] 만큼은 아니어도 [Gold Dust] 정도에는 필적할 앨범이다. 그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은 꼭, 설사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봐도 좋겠다. 'Pitchfork'의 지적처럼, 열정과 자포자기라는 이율배반이 그의 음악 안에서 어떤 식으로 질서지워지는지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