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국엔 왔던 팀들보다 오지 않은 팀들이 더 많다. 록 밴드 얘기다. 롤링 스톤스, 유투, 킹 크림슨. '악동' 머틀리 크루는 결국 한국 땅 한 번 밟지 못하고 해체했다. 이처럼 대가라고 부를 수 있는 밴드들이 아직 한국을 찾지 않고 있다. 아니, 찾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저들이 꼭 한국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저 ‘글로벌’을 일상으로 여기는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어 해본 말이다.
AC/DC라는 호주 밴드도 그 중 한 팀이다. 한국에선 유독 인기가 없(어 보이)는 팀인데 다른 나라에선 스타디움 만석 정도는 쉽게 채우는 밴드다. ‘back in black’과 ‘highway to hell’이 조금 유명하지만 지명도는 딱 거기까지다. ‘아이언맨’이라는 영화 덕분에 그나마 대중에게 좀 알려졌고, 좀 더 관심있는 사람들은 AC/DC 헌정 영화 ‘스쿨 오브 락’을 기억할 것이다. AC/DC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찬밥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이제 완전체 AC/DC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18일(현지시각) 이 밴드의 리듬 기타리스트 말콤 영이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말콤 영은 AC/DC 리드 기타리스트인 앵거스 영의 형이다. AC/DC는 형제가 재봉틀에 써 있던 ‘AC/DC’라는 글자를 보고 만든 밴드였다. 롤링 스톤스와 척 베리를 음악 베이스로 삼았고 블루스에도 조예가 깊었다. 말콤 영은 그런 밴드에서 우직하게 리듬 기타를 연주하며 거친 백킹보컬을 내질렀다. 사람들은 대부분 화려하고 끈적한 앵거스의 기타 솔로에 열광했지만 사실 리프 메이커 말콤 영이 없었다면 AC/DC도 없었을 것이다.
AC/DC는 아마도 위대한 리프를 제일 많이 가진 밴드일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일렉트릭 기타 리프일 ‘back in black’은 전세계 팬들과 매체들이 이견 없이 손꼽는 명리프이고, ‘hell ain’t a bad place to be’ 리프는 잭 와일드에게, ‘riff raff’는 마티 프리드먼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highway to hell’은 마룬 파이브도 라이브에서 연주했을 정도다. 퍼포먼스와 기타 솔로에 탁월했던 앵거스의 영광 뒤에는 형 말콤 영의 묵묵한 뒷받침이 있었다. 그 수단이 바로 기타 리프였고 결과 역시 기타 리프였다. AC/DC는 거의 같은 비트와 엇비슷한 리프들로 앨범 16장을 내고 세계 정상에 섰다. 75년작 ‘High Voltage’와 2016년작 ‘Rock or Bust’의 간극은 좁다. 두 앨범의 차이는 세월의 차이에 반비례한다. 그중 ‘Back in Black’은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를 뺀 다른 어떤 팝록 앨범보다 많이 팔린 작품으로 대중음악 역사에 새겨졌다. 이 모든 일이 말콤 영의 리프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젠가 데이브 머스테인(메가데스)은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와 말콤 영을 가장 위대한 리듬 기타리스트라고 말한 적이 있다. 틀리지 않다. 말콤 영은 로큰롤 리프의 액기스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다.
말콤 영은 치매로 죽었다. 증상이 나빠져 밴드 탈퇴까지 했지만 결국 회복되지 못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AC/DC의 존재는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은 채 눈을 감았다고 한다. AC/DC는 전설이라는 찬사조차 사치였던 밴드다. AC/DC는 하드록을 하는 비틀즈였다. 말콤 영은 그런 밴드의 중심이었다. 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