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Dec 03. 2017

Groovers' Pick1(국내)

볼빨간사춘기 & 10cm


볼빨간사춘기 [Red diary page.1]


한때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같은 유명한 사람은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만 녹음해 팔아도 100만장은 나갈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볼빨간사춘기를 보며 그 얘기가 떠올랐다. 언제부터인지 그들이 만들거나 참여하는 곡은 어느 곡이 먼저랄 것도 없이 차트 정상에 올라 있다. 매드클라운의 ‘우리집을 못 찾겠군요’가 그랬고, 스무살과 함께 부른 ‘남이 될 수 있을까’가 그랬다. 무려 빅뱅을 제치고 1위에 오른 데뷔작의 히든 트랙 ‘좋다고 말해’와 MBC 미니시리즈 ‘군주 – 가면의 주인’ 사운드트랙 [군주 – 가면의 주인 OST Part.2]에 수록된 ‘처음부터 너와 나’가 또한 그랬다. 순수한 사춘기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지은 팀 이름이 정상에 영원히 머물려는 이들의 의지처럼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볼빨간사춘기는 이미 대세가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대세가 될 수 있었나. 보컬 안지영의 백만불짜리 음색, 베이스와 기타에 랩까지 소화할 줄 아는 팔방미인 우지윤의 분명한 업무 분담이 아마도 가장 큰 비결일 것이다. 자신들의 곡을 거의 직접 만든다는 사실 역시 그 비결의 노른자다. 여기서 노력과 재능은 그저 바탕일 뿐이다. 



디지털 싱글과 풀렝스, 미니앨범을 종횡무진 오가며 차트 올킬을 감행하는 이들의 거침없는 행보는 무서울 정도다. 심지어 그 모든 일은 불과 1년 여 사이에 일어났다. 이번 앨범 [Red diary page.1]은 지난해 발표한 [Red ickle]에 이은 두 번째 미니 앨범이다. 역시 좋다. 블랙뮤직의 섹시한 그루브와 인디팝의 수줍은 감성을 모두 쓸어담은 ‘썸 탈꺼야’만 들어도 히트를 점칠 수 있을 정도다. 안지영이 대단한 건 그 대단한 음색을 빼고도 이처럼 곡도 잘 쓴다는 것일 텐데, 이어지는 ‘Blue’까지 듣고 나니 그 재능이 더욱 사랑스럽다. 바닐라 어쿠스틱의 바닐라맨(본명: 정재원)이 쓴 ‘고쳐주세요’의 코러스 멜로디, 우지윤의 그루브감을 가늠할 수 있는 ‘상상’, 스트링을 가미한 안지영의 피아노 발라드 ‘나의 사춘기에게’까지. 앨범은 거의 완벽한 균형과 수준으로 볼빨간사춘기의 사자후로 남았다. 고깃집에서 고기 굽는 소리만 녹음해 내놓아도 수 만 장은 팔아낼 미래. 바로 볼빨간사춘기의 미래다.



10cm [4.0]


듀오 십센치(10cm)는 이제 젬베 치며 노래하는 권정열 한 사람이 이끌고 있다. 기타 치던 윤철종이 지난 7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검찰에 송치, 팀을 떠난 것이다. 권정열은 윤철종을 끝까지 설득했지만 윤철종은 끝내 십센치를 등지고 말았다. 앨범 [4.0]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태어났다. 권정열은 나중에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앨범이라며 이번 앨범을 소개했다. 그렇다 앨범이다. ‘아메리카노’라는 옛 싱글과 ‘내 눈에만 보여’라는 근래 싱글로 스타가 된 십센치의 주인은 아직도 앨범을 고집한다. 3집까지 내고 그가 창작에 회의를 느낀 이유도 몇몇 싱글에만 눈길을 주는 대중의 편한 습성 때문이었다. 앨범 한 장에 시간과 돈, 노력을 제아무리 쏟아 부어도 사랑 받는 곡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권정열의 창작욕에 찬물을 끼얹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떠난 윤철종을 위해서라도 그는 멈출 수 없었을지 모른다. 4집은 바로 그 권정열의 끈기와 집념의 산물이다. ‘Everything’과 ‘일시정지’의 매운 운치는 “눈물을 흘릴 만한 신곡도 포함돼 있다”는 권정열의 지난 예고와 정확히 일치한다. 음악에 임하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만들어간 이 앨범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저 두 곡은 조곤조곤 말해준다. 노래하는 자신보다 듣는 사람들을 더 생각하며 고민했다는 권정열의 고백 역시 두 곡이 가진 의미를 말해준다. 



앨범 재킷 그림이 암시하고 있듯 신보는 꼭짓점 네 개의 사각형 공간에 갇혀있거나 그 곳에서 나가고 싶은 감정들을 다룬 것이다. 한마디로 폐쇄와 해방의 심리를 다루었다는 뜻인데 홍상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찌질이’가 등장하는 ‘Pet’과 여친만을 위한 전화 콘서트를 설정한 ‘폰서트’는 저 두 가지 감정을 모두 흡수해 히트를 예약해둔 트랙들이다. 과연 찌질함은 십센치 음악의 특징이자 정체성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잽싸게 스치는 대목이다. 특히 ‘폰서트’는 마지막 연주곡으로 한 번 더 들려주는 만큼 톤메이킹에 많은 공을 들인 듯 들린다. ‘별자리’처럼 여백을 강조한 퍼커시브 발라드 트랙들에도 역시 싱글보다 앨범 만들기를 즐기는 권정열의 집중력이 새겨져있긴 마찬가지다. 십센치 4집은 지금 순항 중이다. 권정열의 바람대로 특정 싱글들이 아닌 앨범 전체가 사랑 받고 있다. 사람은 잃고 음악은 얻은 권정열. 그의 심정이 문득 궁금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AC/DC 말콤 영, 치매로 눈 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