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 故종현의 유서에서.
지난 18일 연예계에서 또 한 번 비보가 들렸다. 샤이니의 종현이 사망한 것이다. 배우 김주혁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여 된 시점이었고, 세상을 등진 자의 나이가 고작 27살이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를 아꼈던 팬들 가슴이 무너진 건 물론이다.
종현은 샤이니의 메인 보컬이었다. 샤이니는 일본에서 더 유명한 아이돌 보이그룹이다. 지금처럼 BTS를 중심으로 전면적인 케이팝 붐이 일기 전 샤이니는 나름의 케이팝 붐을 이미 일으키고 있었다. 2008년 5월 ‘누난 너무 예뻐’로 데뷔한 것이 종현의 프로로서 첫 발이다. 2005년 청소년가요제를 통해 SM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되고 연습생 생활 3년을 거친 후 손에 쥔 기회였다.
하지만 종현의 죽음이 종현에게 기회를 준 연습생 시스템이라는 지적들이 나온다. 즉, 대형 기획사가 오디션을 통해 뽑은 연습생을 수년에 걸쳐 트레이닝하고 내부 경쟁을 통해 해외에서도 통할 팀을 조합한 뒤 음악 시장에 내보내는 시스템 얘기다. 이 과정에서 연습생들은 매월 성취도를 평가받아 ‘데뷔조’에 뽑히고, 팀워크와 스케줄 상 기동력을 위한다는 이유로 숙소 생활을 시작한다. 이러한 기획사의 가수 육성 관리 구조 아래서 연습생들은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고 성공이라는 강박에 짓눌리게 된다. 말쑥한 팀 하나를 만들어내는데 30~50억 원 비용이 든다는 사실은 기획사가 연습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되는 합리적인 이유다.
프랑스 르몽드는 이런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을 "음악을 수출품으로 만든 제작사의 기획으로 길러진 소년과 소녀들"이라고 비꼬았고,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종현의 사망과 관련해 “한국 유명인들이 악명 높은 중압감”에 시달린다고 보도했다. 걸그룹 EXID의 하니는 언젠가 “심리 상담사가 돼 아이돌 연습생들의 마음을 치료해주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종현이 자살한 원인이 기획사 연습생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지, 그 시스템을 거친 뒤 마주한 ‘화려한 외로움’인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지켜봐 온 그의 재능과 열정이 아까워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종현은 솔로작 'Base'에서 증명했듯 정엽과 휘성을 동경한 탁월한 보컬리스트였고, 아이유와 손담비, 엑소와 이하이에게 곡을 준 젊은 송라이터였다. 물론 작사 실력은 샤이니 시절 때부터 그의 장기였으니 두 말할 것 없겠다.
그러나 종현은 끝내 날개를 다 펼쳐보지 못했다. 2008년 한 인터뷰에서 말한 28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모습, 그러니까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는 멋진 아티스트’라는 끈을 종현은 코 앞에서 놓고 말았다. 힘겹게 이뤘을 실용음악 학사학위와 이루기 직전이었을 뮤지컬 공연 석사과정도 모두 물거품이다. 생전 “행복해져야 한다”는 그의 다짐은 그저 다짐으로만 머물게 됐다.
SES 출신 유진의 말처럼 “화려함 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외로움”과 “무대 뒤의 허전함”이 종현을 데리고 갔는지는 미궁이다. 삶의 이유도 죽음의 이유도 고인만이 알 것이다. 문득 2년 전 가을에 나온 고인의 소품집 첫곡 ‘하루의 끝(End of a day)’의 가사가 떠오른다. 마지막 인사로 좋을 것 같다.
종현,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