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처럼 보이는 무욕의 세계
앨범은 난데없이 블루스에서 칼립소까지 온갖 장르를 읊어대는 테마송 ‘We R AASSA’로 시작한다. 팀 이름이 앗싸(AASSA)다. 이름만 보고 이박사의 음악 같은 걸 상상하지는 말자. 앗싸는 아프로 아시안 싸운드 액트(Afro Asian Ssound Act)의 약자일 뿐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소리로 한 번 놀아보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이름을 '술 한 잔 걸쳤을 때 한국 어른들이 마이크 잡고 내지르는 흥'과 완전히 떼어놓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팀의 주인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전 주인 성기완이기 때문이다. 정가(正歌)를 부르는 팀의 보컬 한여름(그녀 목소리는 '국악 하는 비요크' 정도라 보면 된다) 역시 한국사람이다 보니 앗싸라는 단어를 그저 단순히 영문 약자로만 해석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팀 이름엔 분명 우리가 아는 그 '앗싸'의 정서가 들어있다.
그리고 한 명 더, 아미두 발라니 디아바테. 그는 왕의 통치를 돕던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음악가 계급인 그리오(griot) 출신으로 팀에서 실로폰 조상격인 발라폰을 비롯 칼레바스, 젬베, 다마니, 고니, 둠둠 등 수 십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인물이다. 아미두는 6년 전 경기도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음악 강사로 선발돼 한국 땅을 밟아 여기까지 왔다.
다시 정리해보자. 결국 앗싸는 한국을 대표하는 모던록 밴드를 17년간 이끈 한국인 뮤지션과 옛 선비들이 즐겨 부르던 우리 고유의 성악곡(가곡과 가사, 시조)을 전공한 한국인 소리꾼 한 명, 그리고 성기완이 “현대 대중음악의 핵심”이라 일컫는 아프리카 음악의 본토 예술가 한 명으로 이뤄진 팀이다. 여기까지 글을 썼더니 음반에선 ‘아프로 아시안 뽕짝’이라는 곡이 흘러나오는데, 지금까지 설명을 압축한 단 한 곡이라 말 할 수 있겠다. 곡은 뽕짝과 국악과 아프로 리듬이 하나 되어 처연하다. 신날 것 같은 세 장르가 어울렸는데 왜 처연할까. 비밀은 가사에 있다. ‘날 사랑하던 이가 내 목을 벨 수도 있다네’ ‘자식 없는 사람은 자식 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남편 없는 사람은 남편 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팀 이름과 초반 능청스런 흥만 따지면 마냥 신날 것 같은데 ‘버려진 아이’와 ‘쌍둥이’가 버티고 선 앗싸의 데뷔작 [TRES BONBON]은 마냥 밝기만 한 작품은 아니다. ‘봘라’와 ‘도시난민 발라드’ 같은 곡들은 신스팝과 훵크라는 익숙한 바탕에 플룻의 낭만이 교차해 그나마 나아도, 이 앨범에 담긴 대부분 곡들은 분명 대중의 이해보단 멤버들의 만족에 더 치우쳐 있다. 한국어와 영어, 시아무어(Siamou,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시아무 족의 토속 언어)가 한 자리에서 어울리고, 아프리카와 한국의 시장 소리가 ‘디웨예디솅가’라는 생소한 낱말 아래 하나 되는 모습은 결국 그런 자유의 음악, 음악의 자유를 위한 이색적 합의다.
투어 멤버로 표시된 손경호(드럼, 징)의 타악, MC메타의 랩, 고경천의 건반, 최철욱과 성낙원(킹스턴루디스카)의 브라스. 이 모든 것들이 성기완이 말하는 “소리의 다큐멘터리”를 위해 뭉쳤다. 앗싸의 음악 다큐멘터리를 마감하는 마지막 아방가르드 트랙 ‘Jam20170809wed2057’을 들으며, 나는 문득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내린 다큐멘터리의 정의를 곱씹어 보았다. 그에 따르면 다큐멘터리란 그저 “다양한 해석 가운데 한 가지 해석을 자기 나름으로 제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기완 역시 이 앨범으로 대중음악의 전부를 건들려 한 건 아닐 거다.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는 단지 대중음악을 향한 그 많은 해석들 사이에 자신의 해석을 하나 더 얹었을 뿐이다. 욕심처럼 보이는 무욕의 세계. [TRES BONBON]은 바로 그 세계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