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이프
약관의 싱어송라이터 마루이프의 첫 정규작이다. 마루이프는 지난 3, 4, 5월 매달 한 곡씩 싱글을 발표하며 뮤지션, 보컬리스트로서 가능성을 가늠케 했다. 마루이프에게는 당시에도 50여곡의 습작이 있었다. 정규앨범 다섯 장을 낼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그는 서둘지 않고 있다. 마루이프는 총 8트랙을 담은 정규 데뷔작 [개화(開花)]에서도 미발표곡 5곡만 공개했다. 나머지 세 곡은 기존 싱글들인 ‘소박한 꿈’ ‘알츠하이머’ ‘진분홍 봄날’을 리마스터링 해 다시 담은 것이다. 사실 요즘처럼 싱글을 ‘1곡이 담긴 앨범’으로 취급하는 세상에서 이는 자칫 재활용처럼 보일 여지가 있다. 하지만 본래 싱글이라는 개념 즉, ‘정규앨범 발표 전 미리 선보이는 수록곡’이라는 정의에 기반할 때 이런 재수록은 그리 어색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마스터링을 한 번 더 꼼꼼히 한 것이니, 이는 차라리 사운드 질을 향한 프로듀서의 완벽주의가 얼만큼인지를 말해주는 부분이겠다.
소리를 단련시키려는 김주환 프로듀서의 의지는 은하수 마냥 아스라이 번지는 첫곡 ‘I Feel In Milkyway’의 기타 아르페지오 리프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제임스 모리슨과 에이모스 리, 제임스 블런트 같은 ‘정돈되고 세련된 사운드와 편곡’에 집중했다. 이는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자신의 개인 이력을 이은 행보라기보단, 작금 한국 인디팝 뮤지션들의 음반에서 찾기 힘든 세련된 사운드를 마루이프를 통해 찾으려는 프로듀서로서 탐구에 더 가깝다. 그는 이 숙제를 풀기 위해 편곡자에게 악기 구성과 느낌을 레퍼런스에 따라 구체적으로 주문했고, 믹싱과 마스터링에서도 엔지니어와 한 달 이상을 0.1-2데시벨(db)을 놓고 다투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렇게 스승이자 프로듀서로서 김주환이 추구하는 소리의 완성은 이 모든 것의 본질이 되어야 할 마루이프 음악의 바탕으로서 기여한다.
덜컹거리는 김영진의 리듬 깎기로 침묵을 깨는 ‘시샘달’은 존 메이어의 곡이라 해도 믿을 만큼 섹시하고 단단한 블루스 톤이 인상적이다. 이 곡의 주인공은 감정의 기승전결을 주문 받은 마루이프의 보컬과 김재우의 단정한 끝에 울부짖는 일렉트릭 기타 솔로다. 두 사람은 서로를 겉돌면서 서로에게 스며드는 플레이를 펼친다. 쓸쓸한 독백, 격정의 기타가 안고 부대끼다 기어이 함께 날아오른다. 내가 ‘알츠하이머’를 들으며 마루이프의 정규 앨범을 기다린 건 바로 이런 곡을 듣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 곡 ‘그대와’는 지난 싱글들을 듣고 ‘스윙 하는 포크’라 썼던 내 진단에 정확히 부합하는 곡이다. 황성용의 퍼커션이 은근히 조성해나가는 보사노바 물결 위로 김재우의 어쿠스틱 기타 솔로와 정혜선의 피아노가 구름처럼 떠간다. 코드 반복이라는 작법의 난제를 편곡과 소리다듬기로써 김주환 프로듀서가 어떤 식으로 헤쳐나가고 있는지를 들어보자.
송라이터 마루이프의 정서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있다. 그의 음악 속에서 빛과 어둠은 반대가 아니다. 둘은 공존하며 부서지고, 부서졌다 다시 하나가 된다. ‘Son’은 그런 마루이프의 감성을 오롯이 들려주는 곡이다. 스무살의 풋풋함이라는 마루이프의 정체성은 실상 뮤지션으로서 그의 정체완 별개의 것일지 모른다. ‘시샘달’에 이어 김재우의 전기 기타 솔로가 한 번 더 작렬하면서 마루이프의 잿빛 진지함은 더 무르익는다.
정혜선의 피아노가 전면에 나선 ‘Stray Pet’은 쉽고 예쁜 마이너 멜로디가 대중을 설득해낼 곡이다. 프로듀서 이전에 보컬 트레이너로서 김주환의 고민과 노력이 이 곡을 통해 전해진다. 그리움에 젖은 마루이프의 애절한 노래는 그 고민과 노력에 충분히 화답한 결과물이다.
마루이프는 이번 데뷔앨범을 녹음하며 다섯 곡을 따로 더 녹음해두었다. 이 곡들은 지난번처럼 싱글로서 한 곡씩 베일을 벗어나갈 예정이다. 따뜻하면서 슬픈, 밝지만 어두운 마루이프의 음악 색깔에 나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이 묘한 감정선이 부디 당신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