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숫자들 리더의 음악 외출
9가 스스로를 소개할 때 괄호를 붙인 ‘(9와 숫자들)’을 첨부하는 걸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자신이 9와 숫자들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9와 숫자들이 자신의 밴드라는 것이다. 둘 다 사실이다. 9는 9와 숫자들에 속한 9와 숫자들의 핵심 송라이터다. 그는 팀의 리더이고 밴드의 주인이다. 이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면 앨범 ‘고고학자’에 괜한 의미부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고학자’는 9의 솔로 앨범을 가장한 9와 숫자들의 네 번째 앨범이다.
굳이 가져오자면 ‘고고학자’는 9가 좋아하는 산울림의 김창완이 83년 발표한 첫 솔로작 ‘기타가 있는 수필’에 가까울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데서 두 앨범은 갈린다. 김창완은 홀로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내면을 탐닉한 반면, 9는 ‘스티로폼’ ‘고고학자’ 정도를 빼면 9와 숫자들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악기 편성과 밴드 형식을 취해 내면을 표현했다. 따뜻한 쓸쓸함이라는 야릇한 온기는 두 앨범이 같지만 표현 방식에서 두 사람은 다른 방법을 취한 것이다.
정바비처럼 자기 작품에 대한 생각 밝히길 즐기는 9는 이번 앨범에도 따로 서문을 붙였다. 그에 따르면 옛날을 생각하는 고고(考古)학의 시작은 발굴이고 목표는 복원이다. 고고학은 발굴과 복원을 통해 과거를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낭만적인 상상이다. 음반 ‘고고학자’에 담긴 음악은 고로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할 수 없는 삶을 지켜내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고고학이다. 이것이 9가 말하는 앨범 제목의 의미다.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은 9의 솔로 앨범이라기보단 9와 숫자들의 신보에 가깝다. 멤버들과 함께 했느냐 아니냐에서 솔로라는 전제가 의미를 띨 뿐, 음악 면에서 솔로는 무의미한 전제다. 밴드 때보다 더 담담한 맛은 있지만 멜로디나 가사는 밴드 때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깊다. 예컨대 전하려는 말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황을 설정해 기어코 그 메시지를 전해내고 마는 ‘방공호’는 분명 ‘보물섬’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 앨범이 9의 솔로작이라는 사실을 어떤 곡도 말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피아노와 트럼펫이 어울린 ‘손금’이나 ‘작은 마음’ ‘앞바다’에 새긴 실내악 풍경은 확실히 9가 의도해 찾은 9만의 고독, 그것의 단면이다. ‘메트로폴리스’에서 들려준 일렉트릭 기타 솔로는 9의 솔로 성향이라기보단 아마도 록 성향을 강조하겠다는 9와 숫자들 차기작의 예고편일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세계로 다가가기 위해서입니다.”
9가 솔로 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한 2015년부터 영향 받기 시작했다는 레너드 코언의 말이다. 코언은 9가 자신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 해(2016년)에 세상을 떠났다. 과연 9는 저 말에 동의할까. 자신이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일이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세계로 다가가기 위”함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적어도 이 앨범 ‘고고학자’만은 거기에 가깝다는 걸 알 뿐이다. 이는 앞으로 9와 숫자들 활동을 통해서도 이어져 나갈 창작의 이유가 아닐지. 실비 시몬스가 쓴 코언의 평전 첫 장에서 톰 웨이츠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한 가지 일을 대하는 방식이 모든 일을 대하는 당신의 방식이다,라고. 9의 이번 음악을 대한 우리의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