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어제 발표된 제15회 한국대중음악상 장르분야 후보들 중 내가 선정위원으로 참여한 '모던록 음반 및 노래'와 '메탈&하드코어 음반' 쪽 개인 메모들이다. '선정의 변'에 반영된 글도 있고 반영되지 않은 글도 있다. 옮겨 놓는다.
장르분야
모던록 음반
줄리아 하트 [서교]
가을방학이 방학에 들어간 사이 다시 줄리아 하트를 챙긴 정바비. “13살을 3번 산” 그는 어릴 적 포항에서 유년기의 뜻 모를 서글픔과 마주해 이 앨범을 만들었다. 온순한 보컬 멜로디, 감미로운 기타 솔로, 담담한 드럼 비트. 원하는 것을 갖거나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두 가지 비극이 줄리아 하트의 짠한 모던록에 실려 넘실댄다.
O.O.O [Garden]
오오오는 혁오를 향한 단 하나 대항마다. 그들은 펑키 리듬으로 쓸쓸함을 썰어낼 줄 안다. 그리고 이 앨범은 진화와 성장을 전제한 오오오의 음악적 변함없음이다. 기본적으로 연주와 소리를 다듬는데 소홀하지 않아 그 음악은 팝의 영역으로까지 불려간다. 간간이 터져나오는 하드한 기타 솔로와 칼날 같은 커팅 기타의 공존은 그 대중성 아래 선 예술적 담보다.
파라솔 [아무것도 아닌 사람]
파라솔은 아무렇지 않게 번뜩이는 음악을 들려준다. 평범과 비범이 그들 음악 세계에선 하나가 된다. 사이키델릭록과 모던록, 팝이 나른하게 3자 대면 할 때 이들 음악은 우리에게 판단을 재촉한다. 좋고 나쁨보단 느낌을 얘기해야 하는 음악이다. 아직 덜 평가됐고 더 평가되어야 하는 밴드의 두 번째 미로 같은 음반이다.
언니네이발관 [홀로 있는 사람들]
장렬한 최후였다. 대한민국 인디 음악 역사와 함께 걸어온 그들은 스스로가 이미 대한민국의 인디 음악이었다. 경지에 오른 레코딩 실력과 녹슬지 않은 송라이팅 실력이 이석원의 내면 수다와 꼼꼼히 맞물려 돌아간다. 이대로 사라져 아쉽지만 이 정도면 내려놓아도 좋겠다는 정반대 생각을 이 앨범은 하게 만들었다. 이조차도 언니네이발관답다.
검정치마 [TEAM BABY]
검정치마는 자신의 세 번째 앨범, 그 1/3에 사랑과 쓸쓸함의 음악을 담았다. 그리고 성숙이다. 5년여만의 복귀여서 자칫 퇴화될 법도 했을 그의 감각은 되레 무르익어 팬들의 조바심을 기우로 만들어버렸다. 드림팝과 로큰롤을 앞세우면서도 ‘무국적’이라는 자신의 음악 국적을 느긋하게 꺼내 보이는 영리함은 여전한 그의 매력이다. 이 앨범을 한 두 번 듣고 평가하는 건 부당하다. 20~30번은 들어야 제대로 들리는 작품이다. 명반들은 다 그랬다.
3호선 버터플라이 [Divided by Zero]
이 음반을 듣고 유치한 논쟁거리를 떠올렸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2016년 탈퇴해 앗싸(AASSA)를 이끌고 있는 팔방미인 성기완인가, 아니면 ‘Put Your Needle On The Groove’를 부르며 세인트 빈센트가 된 남상아인가. 답은 두 개다. [Dreamtalk]를 남기고 간 성기완도 이 팀의 주인이고 일렉트로닉으로 3호선 음악을 다른 세계로 이끈 남상아도 이 팀의 주인이다. 두 주인의 이별과 함께 3호선은 다시 태어났다. 논쟁은 끝났다.
모던록 노래
언니네 이발관 ‘홀로 있는 사람들’
유투와 펫 샵 보이스를 언니네이발관을 통해 만나는 경험. 여유와 연륜이 없다면 만들어낼 수 없을 용서의 기운이 곡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따뜻한 냉기를 전하는 그들의 마지막 인사.
검정치마 ‘나랑 아니면’
아이 같은 가사에 어른스러운 음악을 널었다. 조휴일만이 구축할 수 있을 이 불안한 멜랑콜리가 좋다. 거친 노이즈와 단정한 멜로디가 같은 공간에 머무는 중 들려오는 “날 위해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가사는 역시 검정치마의 것이다. 꿈 같은 리얼리즘이다.
입술을깨물다 ‘내버려두지마요’
리듬도 멜로디도 보컬의 음색도 모두 하늘빛 감성에 젖어 있다. 잘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에 삽입해도 어울릴 풋풋한 사랑스러움이 이 곡에는 있다. 이젠 정말 이 밴드, 주목 좀 받았으면 좋겠다.
도재명 ‘토성의 영향 아래’
무서울 정도로 메마른 고독이 온 곡에 퍼져 있다.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긴 나레이션이 피아노와 드럼의 같은 발걸음 위에서 멀뚱히 흘러간다. 흐르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존재와 부재를 바라보는 것. 이 곡을 제대로 듣는 방법이다.
줄리아하트 ‘서교역’
표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익숙한 멜로디. 표절이 아닌 걸 알기에 다정한 노랫말이 정바비의 잘난 감성을 보란 듯 펼친다. 가을방학의 리더가 브로콜리너마저 같은 곡을 들려주고 있으니 참 재미지기도 하다.
메탈&하드코어 음반
김재하 [Into Ashes]
이것은 메써드의 김재하가 쉬라프넬 레코드(Shrapnel Records)에 사랑을 고백하는 앨범이다. 빠르고 낭만적이었던 그 세계를 한국인 기타리스트 손을 통해 다시 만끽할 수 있어 기뻤다.
Abyss [Recrowned]
Djent라는 헤비메탈 유행을 외면하지 않은 어비스가 데뷔 EP보다 더 무겁고 사악한 작품으로 돌아왔다. 군더더기를 빼고 근육질 사운드를 입혔다. 분노를 끼얹어 정의를 활활 태운다. 어비스는 해냈다.
팎(PAKK) [살풀이]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묵직한 음악 살풀이를 감행한 팎. 쉴 틈을 주지 않는 매서운 기타 연주가 일품이다. 포스트 메탈이란 바로 이런 음악에 붙여야 할 이름이다.
메써드 외 [At The Kill]
한국을 대표하는 헤비메탈 밴드 메써드와 사일런트 아이, 그리고 일본이 자랑하는 스래쉬메탈 밴드 크루서파이드의 스플릿 앨범. 우열 가리기를 거부하는 헤비니스의 진검 승부가 펼쳐진다.
크라티아 [Clan Of The Rock]
데뷔 30주년. 한국에서 헤비메탈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를 안다면 크라티아의 장수는 그 자체 박수 받아야 할 일이다. 구수한 80년대 글램메탈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