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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Feb 14. 2018

Groovers' Pick Vol.4 (국내)

조정치, 정준일

조정치 [3]  


조정치의 신보에서 조정치는 한 발 물러나 있다. 작곡자와 편곡자, 기타 연주 정도에서만 조정치는 [3]에서 자신의 역할을 한계 짓는다. 음악의 영원한 주제로 생각한다는 사랑을 주제로 조정치는 아홉 곡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아홉 곡에 여성 보컬 아홉 명을 초대했다. 음악 동료이자 아내인 정인을 비롯, 조정치 때문에 마틴 기타를 잡았다는 김그림, 조정치가 “마성의 목소리”라고 극찬한 사비나 앤 드론즈, 정인이 작곡한 ‘헤어져서 좋은 일들’을 부른 프롬 등 음악 좀 한다는 여성 인디 뮤지션들이 죄다 모였다.


조정치는 지난 10년간 쌓아둔 곡들에 가장 어울리는 목소리들을 섭외하고 싶어했다. 어쩌면 시작 단계에서 이미 그 싱어를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사비나 앤 드론즈의 ‘날 치료해 주세요’나 연진(라이너스의 담요)이 부른 ‘꿈속의 연애’를 들어보면 그렇다. 이는 마치 봉준호가 김혜자를 염두에 두고 [마더] 시나리오를 쓴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프롬이 피처링 한 ‘헤어져서 좋은 일들’은 선우정아가 부른 '이혼'과 더불어 이 앨범에서 가장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덩실대는 컨트리 기타에 우리네 춘향가를 섞은 ‘사랑가’는 정인이 가사를 썼다. 정인은 이 곡 외 기타리스트 조정치의 솔로 실력을 들을 수 있는 ‘때때로’, 레이디제인이 피처링 한 ‘키스 잘 하는 법’의 가사도 써 남편을 힘껏 도왔다. ‘연애의 맛’을 부른 키니 케이(Kinie K.)도 가사를 직접 쓰는 열정을 보였는데 그는 이곡 데모를 처음 듣고 잭 존슨과 제이슨 므라즈를 느꼈다고 말했다.


조정치는 최악부터 생각하던 과거를 지나, 불혹에 접어들며 가지게 된 여유가 반영된 앨범이라고 이번 작품을 소개했다. 그 여유는 실제 가사와 음악을 공평하게 아우른다. 1집의 재치와 2집의 우울이 뭉쳐 3집의 느긋함으로 거듭났다. 현재 앨범에선 뮤직비디오가 재미있는 프롬의 ‘헤어져서 좋은 일들’과 선우정아가 부른 ‘이혼’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랑가'로 시작해 사랑을 주제로 삼은 음반에서 이별 노래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3]은 어디로 튈지 모를 인생 같은 앨범이다.



정준일 [ELEPHANT]


정준일은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Load]와 [Reload]를 내놓고 욕깨나 먹었던 90년대 중후반 메탈리카 입장을 두둔한 적이 있다. 그들은 그저 기존과 다른 시도를 한 것뿐인데 당시 세간은 ‘변절’ ‘졸작’이라는 투로 그 결과물을 서둘러 깎아내렸다. 정준일은 예술가의 변신을 변절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보수성을 아쉬워했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받아들일 때 예술을 하는 사람과 그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은 똑같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록밴드가 AC/DC일 순 없다.


[ELEPHANT]는 정준일의 변신이 담긴 작품이다. 수록곡은 다섯 곡. 그마저도 첫곡 ‘유월’과 끝곡 ‘Walk’는 피아노 연주곡이다. 차이라면 피아노 곁에 비트가 있느냐 없느냐다. 나머지는 곡 쓰고 연주 하며 노래 부르는 정준일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곡들로 채워졌다. 항간에서 ‘파격’이라 진단한 음색과 편곡이 그 세 곡들엔 있다. 안흥찬(Crash)의 스크리밍과 김세황의 기타가 가세한 ‘Whitney’는 중에서도 더욱 거대한 에너지, 섬세한 반전을 품고 있다. 정준일은 이처럼 다섯 곡으로도 자신의 음악과 생각을 들려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 듯 보인다. 때론 잘쓴 단편소설이 장황한 장편소설보다 더 강렬할 때가 있음과 같은 이치겠다.


'Say Yes' 뮤비 컨셉은 앤디 워홀의 뮤즈로 유명한 에디 세즈윅이다. 다 가진 듯 했던 그녀는 그러나 고작 28세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ELEPHANT]는 어둡다. 꿈을 망상으로, 희망을 욕망으로 정의내린 정준일은 이 앨범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려 한다. 긍정이 유행하는 고온건조한 세상에서 그의 내면은 염세가 서식하는 저온다습한 세상을 향해 뻗어있다. 가령 떠난 사랑을 그리워하는 ‘Hell O’의 “내게서 죽어버려”라는 바람은 넬(Nell)이 ‘마음을 잃다’에서 썼던 “언제 죽어줄 생각인가요”와 겹친다. “소년의 성장 같은” 불행을 노래한 ‘Say Yes’ 뮤직비디오 컨셉을 에디 세즈윅으로 잡은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앤디 워홀이 사랑했던 에디는 한편으론 28세에 요절한 비운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세상은 마냥 밝지 않고 인간은 일관되게 행복할 수만 없다.


이 앨범엔 정준일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모두 담겨있다. 대중을 겁내지 않고, 클래식과 알앤비와 헤비메탈이라는 실탄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정조준 한다. 남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행복을 그는 뻥 뚫린 절망의 EP 한 장으로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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