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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21. 2018

Groovers' Pick Vol.5 (국내)

예설, 정승환


예설 [시집]  


“한국적 오리엔탈리즘과 모더니티를 결합한 사운드로 무장한, 2018년 가장 기대되는 여성 듀오”라는 소개를 보고 그저 허풍인 줄 알았다. 효율과 실용을 최고 가치로 치는 시대에 어여쁘게 염한 시체처럼 널브러진 시인의 마음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 역시 현악에 현학을 덧칠한 지적 허영의 그림자일 줄로만 생각했다. 도대체 저게 다 무슨 말들일까.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음반을 틀었다. 그러나 웬걸. 나른한 ‘태초의 아침’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물컹한 건반과 즉흥 기타의 철학적 동상이몽은 마치 이 음악을 장르로 정의내리려는 사람들에게 애쓰지 말라는 듯 자유분방하다. 아무래도 이 팀의 주인은 곡을 쓰며 키 베이스, 리드(Lead), 신시사이저, 일렉트릭 피아노를 동시에 주무르는 김설이리라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곡 ‘산상’과 그 다음곡 ‘코스모스’까지 들으면 프로듀서 겸 송라이터 예설과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정예원이라는 인물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감미로운 고독을 씌운 ‘산골물’도 그렇고, 고즈넉한 신스팝 향이 묻어나는 ‘가을, 이불’도 그렇다. 이건 짧은 미니앨범이면서도 대단한 변별력과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마냥 재즈도, 일관된 팝도, 팔자 좋은 포크도 아니면서 한편으론 그 모든 것인 예설의 음악은 마치 옥상달빛이 선우정아를 만나 해오(HEO)를 염탐하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오리엔탈리즘과 모더니티의 결합”이라면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되어 있다. 더 흥미로운 건 ‘가을, 이불’을 뺀 모든 가사가 윤동주의 시라는 점이다. 실제 이들의 SNS는 온통 윤동주 이미지로 가득하다. 예설의 페이스북에는 윤동주의 사진과 시, 이준익의 영화 [동주]의 이미지가 조용히 공존하고 있다. 이렇게, 예설이 시인의 마음을 얘기하며 앨범 제목을 ‘시집’이라 지은 이유도 얼추 알았다. 다시 ‘태초의 아침’을 듣는다. 처음엔 뭘까 하며 튼 음악을 지금 나는 발견이라 여기고 있다. 이는 앞서 ‘2018년 가장 기대되는 여성 듀오’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고 그 말에 동의하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풍성한 소리와 똑똑한 연주와 여유로운 노래라니. 시인 윤동주가 뜻하지 않은 음악 선물을 우리에게 가져왔다.



정승환 [그리고 봄]  


‘노래를 잘 한다’는 건 복잡한 얘기다. 김경호처럼 고음처리를 잘 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이소라처럼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김광석처럼 둘 모두에서 발군일 때도 우리는 그 사람이 노래를 잘 한다고 말한다. 이 앨범의 주인공 정승환은 어느 쪽일까. 첫곡 ‘다시, 봄’의 투명한 공간감이 정승환의 목소리를 깨울 때, ‘비가 온다’에서 정승환이 높게 흐느낄 때 답은 이미 나왔다. 그는 가창력도 표현력도 좋은 보컬리스트다. ‘눈사람’의 가사를 쓴 아이유가 정승환의 목소리를 콕 집어 칭찬한 것은 그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발라드 가수여서가 아니라, 그 목소리 자체가 귀해서였다. 좋은 가수는 자신의 앨범을 지배할 줄 안다. 정승환은 아직 싱어송라이터라 부를 만한 뮤지션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앨범을 지배할 줄은 아는 보컬이다.



신작 [그리고 봄]에는 손님들이 많다. 17세 때 아이유의 [꽃갈피] 수록곡 ‘나의 옛날이야기’를 편곡하며 프로로 데뷔한 김제휘를 비롯 권순관과 이규호, 존박과 루시드 폴이 작곡가로 참여했다. 소속사 안테나의 대표이자 90년대 한국 대중음악 아이콘 중 한 명인 유희열의 폭 넓은 지원사격, 신대철 동생 신석철(드럼)과 다운헬의 기타리스트 노경환, 재즈 베이시스트 구본암, 그리고 디어 클라우드 멤버들도 정승환의 첫 정규작에 이름을 올렸다. ‘다시, 봄’, ‘비가 온다’, ‘변명’, ‘이 노래가’에서 공동 작업을 제외한 모든 작곡, 작사, 연주를 정승환은 저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자신은 노래에 집중했다. 노래를 부르는 정승환은 신기하게도 그 곡들의 주인이 되어갔다. 그의 목소리를 둘러싼 것들이 배경이 되면서 정승환은 구름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 ‘오뚝이’에서 피아노와 스트링이 내뿜는 풍족한 낭만, ‘이 노래가’에서 터져나오는 밴드 연주 속 거친 자유가 모두 그의 것이다. 베테랑 프로듀서 유희열이 다듬은 소리의 배열, '노래를 잘 한다'는 복잡한 얘기를 쉽게 풀어 들려주는 정승환의 햇살 같은 음색. [그리고 봄]은 MQS라는 대지를 만나 싹을 틔운, 말 그대로 봄을 닮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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