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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21. 2018

We Are X

Stephen Kijak, 2016


X Japan(이하 ‘X’)은 과거에도 지금도 Loudness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록 밴드, 나아가 일본 록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일본 음악평론가들은 X를 일컬어 음악 뿐 아니라 문화 자체를 바꾸어버린 존재라 말하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혁명의 아이콘으로 추켜세운다. 심지어 일본 대중음악은 X 이전과 X 이후로 나뉜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달콤한 말들은 그러나 과장은 아니어서 실제 X 팬들은 그들이 있기에 자신이 살아있다고까지 얘기한다. 극단, 격렬, 섹시, 그루브, 속도감. X는 80~90년대 일본 젊은이들의 대변자를 넘어 젊음 그 자체로 시대 위에 군림했다.


[We Are X]는 그런 X의 이야기, 정확히는 밴드의 리더 겸 드러머, 피아니스트인 YOSHIKI의 음악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지난 2016년 영국에서 제작해 선댄스 국제 영화제에서 초연되었다. 타이틀 ‘We Are X’는 이들 대표작 [Blue Blood]에 수록된 스피드 메탈 넘버 ‘X’ 라이브 연주 때 보컬 TOSHI와 관중 간 콜 앤 리스판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69년생인 이 영화의 감독 Stephen Kijak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뉴 베드포드 출신으로, 보스턴 대학 언론학부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와 감독, 제작을 맡은 데뷔작 <피카소를 만난 적 있나요>(1996)는 1997년 아웃페스트 영화제에서 최우수각본상 및 연기상을 수상했고, 2010년작 <롤링 스톤스의 프랑스 은둔기>는 그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사실 Stephen은 제작자에게 전화를 받기 전까지 X를 몰랐다고 한다. 그는 뉴웨이브를 즐겨 들었던 13~14살 이후 헤비메탈을 끊었지만 X를 듣고 여태껏 이런 음악을 듣지 않은 스스로에게 놀란 끝에 이 일을 맡았다. 게다가 자신이 태어나 처음 산 음반이 Kiss의 [Love Gun]이었는데 이는 YOSHIKI와 TOSHI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SUGIZO(LUNA SEA와 X, Violet UK에서 요시키와 한솥밥을 먹은 바이올리니스트 겸 기타리스트)가 영국 뉴웨이브 밴드 Japan의 베이시스트 Mick Karn과 친구라는 사실 역시 Stephen이 연출을 마음 먹게 된 이유 중 하나였는데, 무엇보다 그가 X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HIDE가 쓴 X의 캐치 프레이즈 ‘Psychedelic Violence Crime Of Visual Shock’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화 제작에 소극적이었던 건 YOSHIKI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자신의 아픈 기억을 만인에게 꺼내놓기가 부담스러웠을 터. 그럼에도 2014년 10월11일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앞둔 X를 찍으며 작품이 크랭크인 할 수 있었던 건 글로벌 아티스트 에이전시 윌리암 모리스 인데버(William Morris Endeavor)의 음악 파트장인 Marc Geiger의 설득에 YOSHIKI가 넘어간 덕분이었다. 그렇게 이 영화에선 지난 수 십 년간 YOSHIKI가 모아둔 사진 및 영상 자료들이 아낌없이 쓰였는데 거기엔 David Lynch가 연출한 ‘Longing’의 미발표 뮤직비디오와 HIDE의 영구차 앞에서 오열하던 팬들 모습, 그리고 기모노 샵을 운영하며 재즈 피아노와 탭 댄스를 즐겼던 부친의 마지막 남은 사진도 포함되었다.



그렇다. 이 영화는 YOSHIKI의 것이었다. Kiss의 [Alive!]와 Led Zeppelin의 [IV], Iron Maiden의 [Killers]를 좋아하고, 피아니스트로선 George Winston과 Keith Jarrett, Vladimir Horowitz, 그리고 록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토쿠사츠(特撮)의 멤버 미시바 사토시(三柴理)를, 드러머로선 Kiss의 Peter Criss, 일본의 명 세션 드러머 무라카미 슈이치(村上秀一)와 아오야마 준(青山純)을 최고로 꼽는 그는 X에서 활동하며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들을 수 차례 겪게 된다. Stephen은 바로 그 YOSHIKI와 밴드 X가 겪은 비극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가령 YOSHIKI와 4살 때부터 친구인 ToshI가 HOH라는 신흥 종교에 빠져 허우적댔던 일, 밴드 해체 5개월 뒤인 98년 5월 HIDE가 자살한 일, 여기에 X를 탈퇴하고 18년이 지나 다시 X와 함께 한 베이시스트 Taiji도 재결성 11달 뒤 자살한 사건은 어린 시절 자신과 어머니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YOSHIKI 부친의 운명과 겹치며 이 영화를 보여주는 사람들과 보고있는 사람들 감정의 온도를 똑같이 끌어올린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바로 그 중첩된 비극과 그 비극을 직, 간접으로 겪은 사람들의 증언, 감동, 눈물을 때론 격하게 한편으론 부드럽게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준다.


그리고 인터뷰이들 중엔 30년 이상 밴드에 몸담아 온 PATA(기타)와 92년부터 합류한 베이시스트 HEATH를 포함한 X의 멤버들 외 반가운 얼굴이 몇 보인다. YOSHIKI에게 록의 매력을 알게 해준 Kiss의 Gene Simmons를 비롯 비주얼 케이(Visual Kei)를 탄생시킨 X와 비슷한 코드를 가진 쇼크록 뮤지션 Marilyn Manson, 마블 코믹스 소속 만화가 겸 명예회장 Stan Lee, Limp Bizkit의 기타리스트 Wes Boland, Guns N’ Roses에서 기타를 연주한 Richard Fortus, 그리고 생전의 George Martin이 바로 그들이다.


백조는 평생 단 한 번 운다. 바로 자신이 죽을 때. – 요시키


Stephen은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X의 이야기가 너무 드라마틱해 더이상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요시키는 그 드라마틱함을 "고통은 나의 친구이자 사랑이요, 그리고 적이다. 나이를 먹지 않는 고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했다. 정말이지 악몽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그의 지난 경험 속 뼈아픈 역설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그것은 곧 시가 2억원에 육박하는 BMW i8 쿠페의 화려함이 떨구고 간 요시키의 슬픈 아픔이었다.


*이 글은 록매거진 <파라노이드> 31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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