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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n 21. 2018

미스 프레지던트

'박정희 세대'에게 말을 거는 영화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포스터. 이 사진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청와대를 나가는 날 찍힌 모습이다. 사진제공=단유필름출처


지난해 10월26일. 영화 한 편이 조용히 극장에 걸렸다. 바로 김재환 감독의 ‘미스 프레지던트’다. 이 영화는 2004년 당시 보수 세력의 유력한 정치지도자로 부각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한 달 동안 밀착 취재했던 감독이 ‘박정희, 육영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만든 영화다. 작품은 2016년 4월부터 지난해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직후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박정희와 박근혜의 시대를 담담히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이 논란의 인물인 만큼 이 영화 역시 개봉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우선 감독의 성향이다. 김재환 감독은 ‘트루맛쇼’ ‘MB의 추억’ ‘쿼바디스’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로 현직 대통령과 지상파 방송사, 그리고 교회 권력을 두루 풍자해왔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최승호 감독의 ‘자백’에도 김 감독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박정희와 육영수,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감독을 곱게 볼 리 없었다. ‘좌파 감독이 만든 음모가 담긴 영화’ 등 억측이 난무했다. 극우 쪽 인사들은 영화 제목의 ‘미스(Mis)’를 걸고 넘어지며 박 전 대통령을 조롱한 영화일 거라 지레 짐작했다. 영화 개봉일이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과 같은 것도 그러한 짐작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영화 제목의 ‘미스’는 세 가지 중의를 갖는다. 첫 번째는 ‘Myth’. 박정희 신화와 육영수 판타지를 뜻한다. 두 번째 미스는 극우 인사들이 지적한 바로 그 ‘Mis’다. 실수 또는 실패 즉,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마지막 미스는 ‘Miss’로, 탄핵을 당했어도 박근혜는 여전히 자신들의 ‘Miss’라는 말이다. 이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이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김재환 감독이 당면한 과제였다.


영화는 세간의 예상을 뒤집었다. 이 작품에는 김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풍자가 없다. 주요 등장인물인 청주에 사는 할아버지와 울산의 한 부부를 감독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동이 터오는 시간 의관을 정제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 앞에 절을 네 번 올린 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조롱은 없다. 가게에 육영수 여사 사진을 걸어둔 울산의 부부 역시 감독의 해석에서 자유롭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김재환 감독은 이들 편에 서 있다. 그들은 지난날 먹고 살 수 있었던 건 모두 박정희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선한 사람들이며, 그들 역시 집회에서 과격한 모습에 혼란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김 감독은 그래서 이들을 절대 혐오감이나 적대감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대신 이들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주고 대화해야 할 지를 고민할 때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산업화와 국가안보를 모욕하는 것은 본인들을 모욕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세대에게 손을 내미는 작품이다. 박정희 세대에게 말을 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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