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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25. 2018

Groovers' Pick Vol.4 (해외)

Black Veil Brides, European Jazz Trio


Black Veil Brides [Vale]


2006년에 결성, 2010년에 데뷔 앨범을 내놓은 블랙 베일 브라이즈(이하 ‘BVB’)는 비교적 젊은 밴드다. 보컬이 90년생이고 다른 멤버들은 많아야 30대 초반이다. 나이는 젊지만 그들이 동경하는 음악은 젊지 않다. 키스와 메탈리카, 머틀리 크루와 엘에이 건스, 빌리 아이돌과 미스피츠, 앨리스 쿠퍼와 와스프가 BVB가 저울질하는 메뉴다. 여기에 뉴메탈과 이모(Emo), 실내악까지 두루 녹인 끝에 밴드는 비로소 자신들이 추구하던 음악과 마주할 수 있었다. 기타 리프와 솔로를 강조한 70, 80년대 헤비록과 그루브를 강조한 2000년대 이후 헤비메탈에서 BVB는 잉태됐다.


채드 크로거(니켈백)를 닮은 보컬, 바이올린을 켤 줄 아는 리듬 기타리스트, 에드워드 밴 헤일런과 랜디 로즈를 좋아하는 리드 기타리스트. BVB는 보컬과 기타 파트를 강조하는 팀이다. 깡 마른 몸을 가진 앤디 비어색은 기교보다 음색을 내세우는 쪽이고, 클래식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모친을 둔 제이크 핏츠(리드기타)는 멜로딕 속주에 일가견 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크리스찬 코마(Christian 'CC' Coma)는 평범한 리듬을 쓰면서 때때로 번뜩이는 드러밍을 들려주고, 백킹보컬까지 소화하는 애슐리 퍼디는 있는 듯 없는 듯 록 베이시스트로서 정통적 역할에 충실하다.



[Vale]은 이런 BVB의 다섯 번째 정규작이다. 웅장한 코러스와 터프한 리프, 아름다운 기타 솔로를 내세우며 이들은 여전히 80년대 글램메탈과 2000년대 뉴메탈 사이 어딘가에 있다. 사실 보컬 라인은 조금 단순한 편이다. 아무래도 앤디 자체가 기교나 힘보단 감정(감성)을 앞세우는 보컬리스트인데다, BVB 음악의 핵심은 누가 들어도 기타에 기울어 있는 탓이겠다. 초기 메탈코어 성향이 거의 증발된 지금 이들 음악에서 팬들이 원하는 건 역시 ‘The Last One’의 메인 리프와 ‘Wake Up’에서와 같은 기타 솔로다. 메탈리카 느낌의 ‘My Vow’도 좋다. 제이크 핏츠가 굿샬럿, 힐러리 더프, 원오크록, 쓰리일레븐의 앨범들을 매만진 존 펠드만과 괜히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게 아니다.


BVB의 밴드로서 가치랄까 의미는 젊은 감각으로 과거와 소통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과거 음악을 답습하는 것에서 그쳤다면 이들은 단명했을 것이다. BVB는 선배들이 남긴 유산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 새 세대와 소통했다. MQS 파일이 증명하듯 소리의 질을 높이겠다는 밴드의 의지는 더 확고해보이며, 작곡과 편곡에서도 조금씩 노하우가 쌓여가는 느낌이다. 살짝 심심한 보컬 멜로디와 가다 서다 하는 곡의 변덕만 손본다면 계속 기대해볼 만한 팀이다. [Vale]은 그 기대치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European Jazz Trio [서촌]


음악도 글도 쉬워야 좋다. 쉽다는 건 친숙하단 뜻이고 친숙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서게 마련이다. 애써 이해하려거나 감상하려 들지 않아도 그것 자체가 이미 이해요 감상인 것이 좋은 글, 좋은 음악이다. 물론 쉬운 결과물은 노력과 실력 없인 낼 수 없다. 쉬운 글, 쉬운 음악은 내공을 요구한다. 어려운 것들을 소화시킨 자만이 남에게 쉽게 전할 수 있다. 네덜란드 출신인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이하 ‘EJT’)는 어렵기로 소문난 재즈를 쉽게 들려주는 팀이다. 영화음악, 클래식, 팝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해석해온지 어언 29년째다. 비틀즈, 아바, 스팅을 요리했고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을 재즈 세계로 초대했다. 세상은 이들 음악을 일컬어 로맨틱 재즈라 했다. 하지만 쉽고 상업적인 덕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과 같은 이유로 이들은 평단으로부턴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아왔다. 쉬운 재즈를 한다는 이유로 쉽게 평가되고 만 것이다.


[서촌]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 사이 히트한 한국 팝 명곡들을 EJT가 재해석한 작품이다. 서촌은 이 앨범을 녹음하고 마스터링 한 오디오가이 스튜디오가 있는 곳이다. 앨범엔 이문세와 김현철, 이상우와 김광석, 김현식과 유재하, 김건모와 조덕배, 일기예보와 배인숙의 대표곡들이 재즈가 되어 수록됐다. 이중 배인숙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는 이 앨범에 투자한 10명 중 한 명의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는 곡이어서 포함시켰다는 사연을 갖고 있다. 녹음은 이틀에 걸쳐 진행됐는데 그 중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도 있었지만 끝내 누락됐다. 이 곡을 연주한 녹음 첫날 멤버들의 컨디션이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다행히 컨디션은 둘째날 회복되었고 곡들은 원테이크로 무난히 녹음되었다.



일단 선곡과 연주가 좋다. 음원보다는 음반에 익숙한 세대들을 위한 진수성찬 같은 선곡표는 어떤 감동마저 준다. 나는 섬세한 멜로딕 무드로 듣는 이를 잠기게 하는 ‘비창’과 ‘우울한 편지’를 따로 추천하고 싶고, 뮤지컬배우 이소정이 부른 김건모의 ‘미련 (feat. 이소정)’도 꼭 들어보라 권하고 싶다. 너무 완벽해 손 댈 곳이 없었다는 마크의 피아노, 부밍과 울림이 심해 선명한 소리를 뽑아내는데 애깨나 먹은 프란스의 베이스, 쉽지 않은 기교로 쉬운 리듬을 깎아내는 로이의 드러밍(‘인형의 꿈’). 녹음 두 달 전 원곡 악보를 받았음에도 녹음 당일까지 테마 멜로디도 몰랐던 이들이 해낸 연주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치 정확하고 깔끔하다. 역시 30년 베테랑의 관록이라는 게 무섭다.


일찌감치 품절된 LP가 증명하듯 이 앨범은 아날로그 세대를 위한 음악 그림이다. 서양 재즈 트리오가 연주한 우리네 인기가요들이다. 녹음과 마스터링에 언제나 남다른 공을 들이는 오디오가이의 완제품인만큼 이 앨범은 반드시 MQS로 들어보길 권한다. 물론 독일에서 DMM(Direct Metal Mastering) 방식으로 제작한 LP, 일본에서 UHQCD(Ultra High Quality CD) 방식으로 만든 CD 역시 같은 곡이지만 전혀 다른 소리를 전한다고 하니 여유가 되면 들어봐도 좋겠다. 이렇게 EJT는 또 한 번 해냈다. 쉬운 재즈로 깊은 감동을 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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