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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n 22. 2018

자우림 - 자우림

담담하고 담백하게, 시들며 피어나는


돌로레스 오리어던과 프레디 머큐리, 앨라니스 모리셋과 커트 코베인에서 자신만의 절망을 발견한 김윤아가 자우림이라는 이름으로 출사표를 던진 것이 벌써 21년 전이다. 자우림은 모던록이 대안(Alternative)이었던 시절 즉, 언니네이발관과 델리스파이스가 ‘인디’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언더그라운드 씬을 재편할 때 저들을 대체할 만한 가장 그럴 듯한 대안으로서 존재감을 뽐냈다. 자우림은 자신들의 세대가 당면한 시대, 자신들의 세대가 감당하는 사회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메시지를 음악에 담아온 밴드였다.     


그런 자우림의 음악은 이중적이다. 부정의 뜻이 아니라 칭찬의 뜻에서 이중성이다. 예컨대 그들은 ‘무지개’ 같은 곡에선 희망을 내뿜다가 ‘미쓰코리아’ 같은 곡에선 이내 서슬 퍼런 사회비판적 이빨을 드러낸다. 죽음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자는 ‘Happy Day’의 지독한 반어법은 그것의 중립이었다. 이번엔 그 중립을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남긴 스트링의 감동을 다시 거두어들인 신곡 ‘영원히 영원히’가 맡고 있다. '라라라라라라' 달뜬 노래를 부르며 지나간 사랑에 눈물을 떨군다. 오랜만에 신도림역이 가사에 등장하는 ‘Psycho Heaven’의 노랫말을 빌리자면 그런 자우림의 음악은 어쩌면 ‘더러운 질문’과 ‘불안한 미소’를 내장한 ‘어둠이 더 궁금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자우림의 잔혹한 음악 세계에서 팀 버튼의 동화 같은 영화 세계를 종종 보곤 한다.        



때론 드림팝의 허무주의(‘Sleeping Beauty’)를 따라 자우림의 새 음악은 담담하고 담백하게, 시들면서 피어난다. ‘아는 아이’에서 리듬을 방목하는 김진만, ‘있지’에서 싸이키델릭 장작을 패는 이선규, 그리고 맹수의 허기를 닮은 김윤아의 웅크린 음성은 ‘狂犬時代’부터 ‘XOXO’까지 가성과 비가성, 외침과 속삭임을 오가며 표현의 최대치를 노린다. 우직하게 자신들의 길을 걸어온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농염한 카리스마가 이번 앨범에는 담겨 있다.      


자우림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앨범에 내걸었다. 셀프타이틀은 보통 데뷔 때 쓰거나 음악 색깔이 눈에 띄게 변했을 때 쓰곤 한다. 하지만 자우림은 두 가지 범례를 무시하고 되레 자신들 음악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셀프타이틀을 썼다. 2018년에 듣고 있는 자우림의 음악은 1998년과 2008년에 들었던 자우림의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9집까지 그들 음악에서 9가지 작법들을 빼내 10곡의 베스트를 뽑아낸 느낌이다. 이제야 말하지만 신보는 버릴 곡이 없는, 그러면서 쉬운, 자우림 역사의 꼭대기를 장식할 만한 수작이다. 1번 트랙부터 10번 트랙까지 10번을 들어야 들리는 작품이 아닌, 한 번을 들어 이해한 뒤 10번을 내리 들어도 질리지 않을 작품이다.


이로써 밴드의 셀프타이틀이 결정짓지 못한 음악적 모험은 결국 11집으로 유예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들은 그 유예마저도 팬들이 기꺼이 반기도록 만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자우림의 저력,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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