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을 듣고 있으면 사케(清酒) 한 잔이 간절해진다. 국악을 들으며 일본 술을 떠올리는 이 청승맞은 양가의 감정은 현을 희롱하는(弄絃) 가야금만의 떨리는 운치가 청주를 마셨을 때 찾아오는 은근한 취기와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산조(散調)란 ‘흩은가락’을 일컫는다. 즉흥성과 가변성을 거머쥐되 형식과 논리도 부여잡는 것이 산조의 초연한 이중성이다.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의 주인 ‘죽파 김난초(竹坡 金蘭草 1911-1989)’는 산조의 효시라 일컫는 김창조(金昌祖 1865-1919)의 손녀다. 죽파는 어린 시절 김창조가 가야금 타는 소리를 “음색이 사각사각해 잘 익은 사과를 깎는 소리”라고 기억했다. 그것은 김창조의 말처럼 “혼이 손에 떨어져야” 탈 수 있는 가야금의 경지였고, 죽파는 그런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영혼에 새겨 끝내 자신의 손끝에서 해방시켰다.
죽파의 가야금 산조는 8세 때부터 가야금을 타기 시작한 죽파가 조부 김창조와 조부의 제자 한성기로부터 배운 가락에 자신만의 세심하고 깊은 농현을 먹인 것이다. 연주 전 호흡을 고르는 '다스름'으로 시작해 24분9초 동안 처연한 몽상으로 번지는 '진양조', 판소리 장단의 간판인 '중모리'와 '중중모리',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는 '자진모리', 급하고 분주한 '휘모리', 그리고 장단 가운데 빠르기로 으뜸인 '세산조시'까지. 음악이 감정의 흐름이요, 삶의 반영이라는 뜻에 정확히 부합하는 구조와 가락을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는 지니고 있다.
이 연주는 대통령상을 수상한 가야금 연주자 조정아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인 정준호의 장구가 빚어낸 소리다. 여백에 갇힌 둘은 서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본다. 침묵을 닮은 은밀하면서도 대담한 긴장이 녹음 현장을 통째로 듣는 이 앞에 펼쳐낸다. 굳이 노이만(Neumann)사의 KU100 더미헤드 바이노럴 스테레오 마이크를 첨부하지 않더라도 그 현장감은 이미 현장에 있던 두 사람의 호흡에서 숙명처럼 배어나왔다. 뜯는 순간 사라지는 가야금의 울음, 치는 순간 부서지는 장구의 격정이 꺾어 털어 붓는 술 한 잔의 덧없음에 닿아 조정아와 정준호는 비로소 김죽파의 가락 파종을 겨우 거두어들인다. 그러고보면 '음악에 취한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음반을 들을 때나 쓸 수 있는, 아니 써야만 하는 귀한 표현인 듯 싶다. 함부로 쓸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