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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n 28. 2018

아시안 체어샷 - Ignite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바치다!


한국에서 록과 국악은 심심찮게 만나왔다. 가령 작은거인을 이끌며 록을 하던 김수철은 국악에 매료돼 아예 그쪽 길로 노선을 튼 경우다. 폭넓은 식견을 가진 송창식 역시 자신의 음악 안에서 서양의 클래식과 우리의 클래식(국악)을 달리 대하지 않았고, 백두산의 김도균은 따로 그룹을 차려 ‘정중동’이라는 기타 산조 앨범까지 냈었다. 국악을 ‘한국적인 소리’로 대신 쓸 수 있다면 엽전들을 이끈 신중현은 ‘한국적인 록’의 시초로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사람이겠고, 25년 전 서태지가 ‘하여가’라는 곡에 태평소를 삽입한 것도 소소하지만 록과 국악이 만난 가장 유명한 일화로 짚고 넘어가야겠다. 잠비나이와 씽씽이 이 바닥의 현재진행형이란 건 물론 두 말하면 입 아플 사실이다.


아시안 체어샷은 그런 선배, 동료들의 시도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어가고있는 록밴드다. ‘뛰놀자’와 ‘봄을 찾아서’라는 곡이 들려주듯 이들은 블랙 사바스, 레인보우 같은 70년대 영국 하드록에 신중현, 산울림, 갤럭시 익스프레스처럼 ‘한국적인 록’을 하는 팀들이 합승한 음악을 구사한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절망하는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바치는 신작 ‘Ignite’는 그런 밴드의 음악 성향을 같은 방향으로 더 몰고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낸 작품이다.


물론 이들이 한국적인 록을 일부러 끌어내는 팀은 아니다. 한국사람만이 독해해낼 수 있는 정서, 작곡하고 연주하는 자들로서 가진 느낌에 기대 아시안 체어샷은 오늘의 자유분방한 음악에 이르렀다. 밀린 과제를 다 해치워버린 느낌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을 보면 이번 작업에 멤버들은 꽤 만족하는 눈치다. 지난 프로듀서였던 제프 슈뢰더의 어깨 너머로 배운 프로듀싱 지식을 팀 스스로 응용한 일은 그중 가장 중요한 일화일지 모른다. 전작과 발매 간격이 햇수로 5년이다 보니 드러머가 박계완에서 이용진으로 바뀐 것 역시 밴드로선 새로운 자극이 됐을 일이다. 팝록 밴드 온달에서 활동한 이용진은 과거 네스티요나에서 이미 손희남(기타)과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다.



아시안 체어샷 2집은 ‘꿈’ ‘무감각’ '그땐 우리' 정도를 빼면 시종 에너지가 들끓고 흥이 넘치는 작품이다. 한국적인 것과 서양의 것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바탕 신명나는 판을 벌이는 것이다. 예컨대 ‘뛰놀자’의 인트로는 국악이지만 민중노래의 엄숙함이 깃든 ‘친구여’의 중반 기타 솔로와 리프는 철저한 블루스록에 기반해있다. 드러머 이용진이 굿판 느낌을 내려했다는 ‘산, 새, 그리고 나’에서도 그렇듯 이처럼 우리의 흥과 서양의 그루브를 엮어 절망하는 청춘들을 달랜다는 음반의 설정은 트랙들을 지나며 어느새 감동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심지어 그 감동의 기운은 방송사들이 아직도 각성하지 못하고 ‘방송불가’라는 딱지를 붙인 ‘각성’이라는 곡에까지 미쳐 오늘도 ‘헬조선’을 이겨낸 대한민국 청년들의 가슴에 인이 되어 박인다. 끝곡 ‘그땐 우리’는 그런 그들을 위한 밴드의 마지막 위로다.


인생(삶과 죽음)과 종교(부처와 예수), 권력과 쾌락이 초현실적으로 엉겨있는 커버 아트. 나는 이걸 보며 아시안 체어샷이 이상에 기반한 현실이 아닌, 현실에 기반한 이상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밴드라고 생각했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이상의 예술인 음악으로 그들은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뚫어져라 직시하고 있다. 들리고나면 사라지는 음악의 서러운 숙명을 통해 자고일어나면 세상과 싸워야 하는 젊음의 서러운 운명을 다독인다. 아시안 체어샷의 ‘친구여’와 조용필의 ‘친구여’는 바로 여기에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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