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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03. 2018

Dear Chopin

재즈가 쇼팽을 만나다


재즈가 쇼팽을 만났고 고희안은 신현필을 만났다. 재즈밴드 프렐류드의 피아니스트 고희안, 클래식과 재즈 뿐 아니라 국악과 인도음악, 일렉트로닉에도 관심이 많은 색소포니스트 신현필. 두 사람은 버클리 음대 동문이다. 2000년대 중반, 한 명은 졸업 중이었고 한 명은 입학 중이었다. 둘은 이후 한국에서 다시 만나 듀오로 2년간 호흡을 맞춘 뒤 앨범을 내보자는 데까지 갔다. 뭘 할까 궁리하다 눈을 돌린 곳은 다름아닌 서양 클래식. 다룰 구체적 대상은 선곡 과정에서 쇼팽으로 수렴됐다. 신현필은 전공이 클래식이었다. 고희안도 조수미 투어에 몸담으며 서양고전음악을 맛본 상태였다. 사실상 앨범을 낼 준비가 끝난 거다. 남은 건 편곡과 연주 녹음 뿐이었다.


쇼팽은 피아니스트로선 혁명가였고 작곡가로선 시인이었다. 그는 음표들로 시(詩)를 썼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그래서 자신의 친구인 쇼팽의 진정한 조국이 폴란드가 아닌 '시(詩)의 나라'라고 했다. 쇼팽 자신의 말처럼 그의 음악은 "마음 속에 천 가지쯤 소중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곳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쇼팽의 음악은 겸손하고 섬세했고, 그의 연주는 깔끔하고 확실했다.



고희안과 신현필은 그런 쇼팽의 특징을 지키는 안에서 쇼팽을 버렸다. 쇼팽이 작곡할 당시 의도와 즉흥성까지 생각하며 변주했다는 둘은 재즈라는 울타리 안에 쇼팽을 가둬두고서 가끔씩 그의 외출을 허락하는 듯한 음악을 들려준다. 신현필은 구체적인 멜로디를 불고 고희안은 그 멜로디가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풀을 고른다. 다섯 번째 트랙인 '녹턴 제1번, 작품37'은 그 좋은 예다.

선곡은 11곡에서 마감됐다. 더 할 수도 있었겠지만 원곡에는 없는 재즈 색소폰의 영역도 고려해야 했기에 선곡은 많지도 적지도, 또 완전히 대중적이지도 마니아적이지도 않다. 존 필드가 시작해 쇼팽이 완성한 '녹턴(야상곡)'을 비롯해 스페인 민속무용인 볼레로에 폴란드 민속 춤곡 리듬을 얹은 '볼레로 작품19',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선율을 가진 '즉흥환상곡 작품66',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의 강아지가 제 꼬리를 잡으려 원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만든 '왈츠 작품64', 윈스턴 처칠이 좋아한 '발라드 제3번, 작품47', 그리고 서른 개 쇼팽 가곡 중 하나인 '무덤에서 온 찬가'까지. 21세기를 사는 두 재즈 뮤지션은 19세기를 산 한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영혼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음악 장르에서 클래식과 재즈는 '자유를 담지한 보수'라는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 자유를 벗삼은 아름답고 즉흥적인 면에 대중이 끌리는 한편, 그 엄격한 자부심과 고집에 대중이 등을 돌리는 것이다. 이 작품은 후자의 그런, 대중이 불편해하는 거품과 긴장을 걷어낸 앨범이다. '즉흥환상곡 작품66'을 이들이 어떻게 요리했는지 들어보라. 재즈가 클래식에게 스윙을 건네면서 쇼팽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고희안과 신현필이 노린 건 아마도 이것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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