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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13. 2018

H a lot

인디록의 만루홈런


기존 자신의 팀을 벗어난 뮤지션들의 의기투합은 음악팬들에겐 손 닿지 않는 등허리 가려움을 씻어주는 효자손 같은 것일 수 있다. 그것은 결성 전엔 손에 잡히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결성 후엔 모두가 움켜쥘 수 있는 현실의 음악이다. 건즈 앤 로지스와 스톤 템플 파일럿츠가 만났던 벨벳 리볼버,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과 사운드가든이 충돌한 오디오슬레이브에서 우린 이미 그 현실을 경험한 바 있다. 국내에선 들국화, 신촌블루스, 사랑과 평화가 어울린 슈퍼세션(Super Session)과 넥스트, 패닉이 함께한 노바소닉이 퍼뜩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 또 한 팀이 있다. 이름도 생소한 에이치얼랏(H a lot). 그러나 밴드명은 낯설지언정 멤버들의 이력은 낯이 익다. 그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디계에선 이미 정평이 나있는 실력파들이다. 


에이치얼랏은 4인조다. 보컬과 기타에 조규현, 기타에 류정헌, 베이스에 한진영, 그리고 드럼엔 최재혁. 각각 리플렉스, 코어매거진, 마이 앤트 메리, 델리 스파이스를 거쳤다. 특히 한진영과 최재혁은 옐로우 몬스터즈라는 밴드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고, 최재혁은 현재 국악메탈 밴드 잠비나이의 드러머이기도 하다. 이런 경험 많고 바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음악은 어떨까?


한마디로 터프하다. 첫곡 'Easy'부터 그렇다. 그러면서 멤버 각자가 거친 밴드들이 공유하는 멜로딕 감성을 이들은 놓치지 않는다. 두 번째 곡 'Prom'이 그런 편이다. 이 말은 이들 음악이 후바스탱크의 포스트 그런지와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의 팝 펑크 정도를 겨냥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Nothing But a Dream' 같은 곡에선 트래비스 냄새마저 풍긴다.) 리플렉스 음악 지분의 절반일 조규현의 목소리는 냉소적인 후지와라 모토오(범프 오브 치킨) 같고, 창백하고 두터운 류정헌의 기타 톤은 그런 조규현의 감정 배설에 맹렬히 맞선다. 옐로우 몬스터즈에서 그대로 옮겨온 리듬 파트는 더 노련하고 자연스럽다. 한진영의 베이스는 마치 이 밴드가 자신의 마지막 밴드가 될 것 마냥 절박한 굉음을 내뿜고, 박진감 넘치는 최재혁의 드러밍은 여태껏 그의 커리어 중 가장 안정된 플레이에 다가서있다.



이런 전반적인 느낌에 비추어 에이치얼랏의 작곡과 녹음 과정, 합주 호흡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된 듯 보인다. 꼭 이 음악(만)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레퍼런스보단 각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서로 소통, 보완해나가는 작법 속에서 이들 음악은 발화했을 것이다. "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담백하고 솔직하게 구현"하겠다던 밴드의 입장은 그래서 중요하다. 어쩌면 이들은 그러모은 자신들의 개인 취향이 만 가지 대중 취향에 부합하는 우연의 징조를 본 것일지 모른다. 조규현이 왜 "방향성이 없는 것이 유일한 방향성"이라고 말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바야흐로 '홍대 여신'에 이어 '홍대 어벤져스' 시대다. 2016년엔 ABTB가 있었고 2018년엔 에이치얼랏이 있다. 질주하는 슬픔, 우울한 환희, 곤두박질 치는 희망. 한국 인디록씬에 만루홈런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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